▲ 문학과지성사|2016년 6월 16일|8000원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생존 증명서」 부분 발췌)

 

산 채로 썩지 않기 위해 세상을 달관하지 않겠다는 최승자 시인의 근황을 담은 새 시집이 나왔다.

 

삶·사랑·죽음을 누구보다 독한 시어로 길어 올리며 독보적인 시 세계를 열어온 그의 신작 《빈 배처럼 텅 비어》는 2011년 선보인 《물 위에 씌어진》 시집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시집은 ‘나’라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빈 감방’을 증명하기 위한 일기가 92편의 시로 묶였다.

 

새로운 시를 찾기 위해 고독을 헤매다 결국 신비주의에 빠져 환청·환각까지 겪어야 했던 최승자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살아왔나/“보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세상은 이미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하루가 쌓여가는 매일을 살아가는 인류를 ‘코미디’라 조롱하는 그의 지독한 염세주의적 시선은 줄곧 자기부정, 자기모멸, 위악으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가혹하리만큼 고독 속으로 내몰린 최승자 시집의 화자들이 이제 ‘그녀’가 아닌 ‘우리’의 모습으로 읽힌다.

 

김소연 시인은 이 책의 발문 「우리 시대의 유일무이한 리얼리스트」를 통해 “갖가지 퇴행을 겪으며 골고루 망가져 가는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최승자 시인의 시는) 너무도 ‘정확한 직시와 예감’이었음 증명했다”고 말한다.

 

또 “파국의 파토스가 문학의 귀결점이라는 사실에 많은 시인이 동의해왔으면서도 끝까지 수행해온 시인을 우리는 목격해본 적이 없다”며 “최승자는 끝까지 살아남아, 파국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은 유일한 시인”이라고도 덧붙였다.

 

 

***작가 소개***

승자 시인은 1952년 충남 연기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독문과에서 수학했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에 시 「이 時代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 시대의 사랑』(1981) 『즐거운 日記』(198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