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혜영<소설가>

올해 모교 총동창회에서 리마인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일흔 한 살이 된 1회 선배부터 마흔 세 살 막내들까지 총 400여 명이 모여 유람선을 타고, 마상쇼를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60을 넘긴 선배들은 이렇게 놀 기회가 드물다며 진종일 싱글벙글했다. 진행팀을 향해 어린애처럼 검지 하트를 만들어 날리는 모습에서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모교 1회 선배다. 방앗간일 때문에 바빠서 리마인드 수학여행에 참석하지 못했다. 함께 가자고 전화했더니, 일 때문에 못 간다며 조심해서 다녀오라던 당부가 행사 내내 맴돌았다. 일 때문에 참여 못한 게 처음이 아닌데도 유달리 신경 쓰인 건 아마 얼마 전  들은 이야기 때문 같았다.

한 달 전이었다.

“가게 접고 수리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야겠다. 어차피 더 나이 들면 이층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갑자기 부모님이 은퇴계획을 말했다. 평소 힘에 부쳐 하는 걸 알고 있던 터라 우리는 반색을 표했다. 말하는 부모님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아무래도 돈 문제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자식 중 누구도 나서서 아무 걱정 말라고 위로해드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약간 어색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안부를 주고받는 데, 아버지 목소리가 이상했다. 물었더니 평소 속을 썩이던 치아를 발치해서 그렇다며 임플란트를 4개해야 한다고 했다. 보험이 일부만 적용돼 600만원이 든다고 했다.

“그래도 당연히 해야죠. 좀 보태드려요?”

“아니다. 걱정마라. 그 정도는 다 있다.”

그래도 나는 맘이 편치 않아 저녁에 귀가한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동생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래? 다행히 아버지가 돈은 다 준비됐대.”

“무슨 말이야? 어머니는 일 년 더 가게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데…….”

긴 정적이 동생과 나 사이를 흘렀다.

두 분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태껏 두 분을 옆에서 지켜봐 왔다. 장담컨대, 두 분은 한번도 쉼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그 분 중 한 분은 70을, 나머지 분은 60을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일을 놓기가 어렵다. 은퇴 이후가 두렵기 때문이다. 가게를 그만 두면 과연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그야말로 막막한 것이다.

어찌 두 분 뿐이겠는가? 요즘을 흔히 100세 시대라 한다. 지난 40년 사이에 평균 수명이 20세 이상 늘었다. 문제는 늘어난 수명만큼 사회가 따라오지 못하는 데 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2·30대 청년을, 주유소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는 중장년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취업연령은 갈수록 늦춰지고, 퇴직은 점점 빨라지고, 주부들은 자녀학비 때문에 식당으로 내몰리고, 할아버지들은 관리실에서 일하는 그야말로 100세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대한 비정규직의 국가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비정규직만으로 나라 경제를 튼튼히 세울 수 있을까? 한번 곰곰 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