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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를 보내며<신진우>
신진우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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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0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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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무더위는 처서(處暑)가 지나면 물러간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모기 입이 비뚤어져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히지 못한다’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언젠가 필자에게 공부하는 학생에 처서(處暑)의 한자 쓰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곳 처(處)자의 쓰임에 납득이 안 갖던지 인터넷의 지식검색을 두드려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검색창에 곳 처(處)의 해석이 ‘제재하다. 결단을 내리다. 처단하다’등으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을 처단하다? 일견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처서의 처(處)는 거둘 철-물러날 철(撤)이다. 이전에는 음(音)이 같거나 비슷한 한자끼리는 서로 바꿔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지식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유희이다. 이것을 모르면 한문해독이 안 된다. 비단 한문뿐만이 아니라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가정법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그레고리 펙과 헤어져 자국 대사관으로 가던 길에 우연히 미용실에 들려 긴 생머리를 자른다. 이발사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서 강변(테베강) 데이트를 신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오드리 헵번이 “I wish I could.”라고 대답한다. 영어가 짧은 사람은 가고 싶어 하는 줄 알겠지만, 이 문장을 직설법으로 고치면 “I am sorry. I can’t go there.”가 된다. 즉 “유감스럽지만 못가겠다”는 뜻이다. 한자(漢字)문화권에서는 대략 보름간을 기준으로 일 년을 24절기로 나누어 농사의 시종(始終)을 맞추어 나갔으며 대자연의 섭리에 삶을 순응해왔다. 가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입추(立秋)가 가을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면, 처서(處暑)는 여름이 물러남을 알린다. 백로(白露)라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가을인 추분(秋分)이 시작된다. 한 계절 당 6개씩 안배해 놓은 그 정확성도 놀랍지만, 각 글자가 지니는 함축성은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지구상 어느 언어도 한자(漢字)가 가지는 상징성과 함축성을 능가하는 언어는 없다. 1949년 모택동은 마침내 장개석 군대를 몰아내고 중국천하를 통일한다. 그는 곧바로 문자개혁(文字改革)을 단행하려하였다. 사실 모택동은 아예 한자를 없애버리고 알파벳으로 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려고 했다. 그 자신이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식인 출신으로 한자의 오묘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동시에 한자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문은 그 문화권에 깊숙이 살아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난한 세월이 걸린다. 필자는 70년대 중반부터 중국어를 공부했지만 그 헤아릴 수 없는 심오함에 놀랐다. 모택동의 혁명정신을 익히 아는 측근들은 혼비백산해 그 대안으로 간체자(簡體字)를 건의하게 되었고 결국 간체자가 태어나게 되었다. 물론 간체자라고해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은 아니다. 옛적부터 있어오던 날림체(주로 중국황실의 기록을 맡던 속기사들이 날림체를 많이 창시 했다.)를 기준으로 간체자를 만들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중국주변의 국가들은 중국이란 나라의 영향을 받아왔다. 침략도 받았고, 문화적 영향도 받았다. 그렇지만 문화적 영향에 대해 정신적 부채를 느낄 필요는 없다. 중국문화는 불교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인들이 인도인들에게 정신적 부채를 상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중국무술도 사실 알고 보면 인도에서 나왔다. 중국인들에게 무술의 원천(품세 또는 투로)을 가르쳐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인도인 보디 다르마(달마 대사)이며, 그 이전에는 힘센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막 휘두르는 막싸움은 있어도 체계적인 무술 교본은 없었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향상국의 왕자로서 인도 전통 무술이 ‘깔라리빠야츠’의 고수였다. 인연이 있어 보디 다르마가 중국에 건너가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인도 전통무술인 깔라리빠야츠를 전하게 된다.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의 중요무형문화제 제 13호로 등재되어 전 중국이 벌집 쑤신 듯 한바탕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단오(端午)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지금의 호북성, 호남성)의 충신 굴원(屈原)이 유배지에서 자신의 충정이 받아드려지지 못하고 조국이 진나라에 멸망하자 멱라수에 몸을 던진 것을 그 기원으로 한다. 만고충신이 물고기의 밥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 물고기에게 밥을 던져주고, 용선(龍船)놀이를 해왔다. 중국은 자신들이 원조라고 흥분하고 있으나 강릉 단오제는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갖고 잘 발전해온 것이다.<신진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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