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지난 10월 14일 저녁, 서울 남산 아래에 있는 ‘문학의집 서울’에서 소설가 최현식(1924∼2010) 선생을 회고하는 자리가 있었다. 최 선생은 6년 전 10월 4일에 가셨다. ‘문학의집 서울’이 매달 작고 문인을 회고하는 자리를 ‘음악이 있는 문학 마당 -그립습니다’란 이름으로 마련하여 벌써 171회째에 이르렀다. 과작이었던 데다 오랫동안 변방인 제주에 머물렀고, 교류가 있었던 중앙 문인들도 거의 타계하여 잊혀진 작가로 여겨질 것 같던 선생에 대한 자리라 반가웠다.
섬을 떠나 섬을 보자는 심사로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한 지 열흘 되는 날이었다. 시는 엉덩이가 질겨야 하는 소설 같은 거와는 다르니, 방에 박혀 있기보다는 늘 내 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서울’을 이 기회에 여기저기 좀 다녀보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제주 생활 50년의 나는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여길 당분간이라도 떠나 여기의 나를 보자. 다른 데와 달리 밥이 제공 되지 않아 출입이 좀 자유롭기는 했다.
이사장인 김후란 시인과 함께 성춘복, 김시철, 한기팔 시인, 박순녀, 현길언 소설가, 전옥주 희곡작가 등과 차 한잔을 하고 문학 모임이 자주 열리는 홀에 들어가니 젊지 않은 이들 3∼40명이 앉아 있었다. 짐작하건데 최 선생을 알고 온 이들은 아닌 듯했다. 이 모임을 적극 권유한 같은 함경도 출신으로 제주에 자주 와 최 선생과 각별하게 지냈던 김시철 전 팬클럽 회장이 회고담을 시작했다. 본인이 50년대 말 김광섭 시인이 하는 ‘자유문학’지 편집장을 하여 문인들을 많이 만나고 있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갓 등단한 최 선생을 소설가 최정희 여사의 집 화투판에서 처음 만난 얘기부터 털어놨다. 함북 성진 출신의 김 시인은 최 선생보다 6년 아래로 87세, 최 선생이 가시던 때의 나이지만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정정했다. 최 선생이 가신 다음 해 여기 한경 신창의 천주교 묘지에 한기팔 시인과 같이 가 술을 올리며 지금도 살아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던 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