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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태풍 차바가 지나간 뒤에 가을임을 알리는 서늘함과 빗줄기가 하루하루를 채웠다. 지난 번 칼럼에서 태풍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자연 재해라고 관조의 대상인 것처럼 읊었지만, 피해에 대한 복구는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태풍 차바로 패해를 입은 농작물 면적이 전국적으로 1만3713㏊에 달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지역별로 제주가 7552㏊로 가장 컸고, 울산 1315㏊ 가 뒤를 이었다. 농작물의 피해에 대한 정부 및 지자체의 효과적인 지원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추수(秋收)의 계절에 농민들의 시름이 조금이라도 덜어졌으면 한다.
요 며칠 전 새벽에 산보삼아 동네 돌담 길 따라 걷다가 돌담 옆 밀감 밭에 서서 노란 수건으로 감싼 햇빛 가리개용 모자는 나뭇가지에 걸쳐둔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한 노인을 봤다. 사람에게는 모방 심리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어서인지, 이에 따라 하늘을 같이 쳐다보았다. 비가 엊그제까지 온 뒤라 약간 흐린데 밭 위의 하늘구역만 구름이 걷혀 있어서 높고도 파란 가을하늘 빛이 눈부시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 저 하늘빛이란. 이른 새벽에 밭일 하려던 노인의 고달픔이나 이제 서리가 내려앉을 서늘함으로 움츠러드는 육체와 마음을 하나의 점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가을 하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해주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일까.
10월 23일이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었고 11월 7일이 입동(立冬)이니 이러한 가을하늘도 볼 수 있는 시기가 얼마 없다. 해가 갈수록 가을은 짧아지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짧은 가을에 완연한 파란 하늘 보기도 어려웠다. 제주는 며칠간 가을비가 내리고 그리고 흐린 날씨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물론 가을비나 흐린 가을하늘도 그 나름대로 운치를 갖고 우리네 감성을 촉촉이 하게 하여주기도 한다.
언제가 라디오에서는 이 가을 정서에 가장 맞는 노래로 가수 고(故) 김광석의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을 들려준 적이 있다.
비가 내리면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바람이 불면 내가 알고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바람이 불면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을이 되면 이렇게 비와 바람 그리고 흐린 하늘마저 다른 의미로 다가와 우리들의 감수성을 흔들어 대곤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을하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그 높고도 높은 짙은 파란 하늘색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가을 하늘은 왜 다른 계절 때보다 높게 보이는 걸까.
계절마다 하늘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습도’가 그 비밀라고 한다. 보통 여름철에는 덥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데 습도가 높은 대기 중에는 수증기 입자가 많아서 공기 중의 많은 물방울들이 태양빛을 흡수해서 빛의 산란을 방해하기 때문에 하늘이 뿌옇게 보인다. 그런데 가을에는 건조한 ‘양쯔강 기단’이 한반도에 영향을 줘서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지면서 건조한 환경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증기나 작은 물방울들이 적어지면서 짧은 파장의 파란빛이 잘 산란되어 가을 하늘이 유난히 더 파랗게 보이게 된다.
그 높아만 보이는 가을하늘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게 할 것처럼 종종 아찔하게도 느껴져 다시 땅을 쳐다보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의 인생이 짧다 하여도 어느 순간 자연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가슴속의 우주는 무한대로 펼쳐지어 우리네 삶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가게 하여 주는 것 같다.
내외로 어지럽고 힘든 일들이 들이 닥치고 있다 하여도 우리 곁에 그 찰나의 옥빛 가을하늘을 날아 볼 수 있는 찬란한 희망이 존재함을 잊지 말고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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