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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사에 대한 단상<신진우>
신진우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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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23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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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친구 중에 문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의학(韓醫學)을 공부한 후에 40대 중반에 중국에 건너가 중의학을 공부한 이가 있다.
물론 그 친구는 졸업장을 받긴 했지만, 그다지 뛰어난 중의사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중국유학은 학비(중국인의 열배)만 충실히 내고 ‘칭커’(請客:treat:한턱)만 잘하면 쉽게 졸업할 수 있으므로 졸업장을 받아도 그 친구는 그다지 자랑스럽지가 않았다고 말하였다. 친구는 무려 6년을 중국에서 살다 왔음에도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와 같은, 생전 처음 발걸음을 디디는 낯선 골목길에서 느끼던 까닭모를 친밀감이나 격세유전의 인연을 중국에서는 못 느꼈다고 말하였다.
여행이든 유학이든 무수한 인연의 고리가 있어 그곳에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풀뿌리며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뜻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다 있을 이유가 있어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6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대체 무엇이 이 친구를 이렇듯 중국에 대하여 무정(無情)한 이로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문학적 감수성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친구에게 중국의 사회주의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이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작금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의 단맛은 즐길 대로 즐기면서(공산주의 국가로 넘어 갈 것도 아니면서) 사회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일부 세력들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소련의 반체제 작가이던 솔제니친이 오랜 기간의 옥고를 치르고 갖은 고초 끝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망명해 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괴리감은 “도대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왜 이리 통제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 때는 갖가지 통제에 시달리다 막상 아무 통제가 없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살려니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허전함’이 그를 낯설게 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철저한 감시와 통제에 의해 움직여지는 체제이다. 공산주의는 종교를 부정하지만 공산당 자체가 사이비 종교다. 친구가 두 번째로 허탈함을 느꼈던 것은 같은 교실에서 나란히 앉아 함께 공부하던 옆자리의 동료 유학생들의 면면을 보고 느낀 실망감이다. 요즘에야 열 명 중의 아홉 명은 대졸이지만, 90년대 중반에 유학을 갔던 친구의 말로는 유학생의 99%가 고졸이었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이때 누구든 학비(중국인의 열배)와 기숙사비(역시 중국인의 열배)만 잘 내고 조용히만 있으면 다 품어 안았다. 어차피 중국에서 개업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한 성(省)에 단 하나의 중의대학이 있는데, 보통 한 성의 인구가 적어도 6∼7천만은 되니 중의대학에 입학하려면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4천만에 한의대가 열 댓 개는 되는데,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면 누가 더 우수한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유학생이었는데 중국정부가 너무 무분별하게 받아 들였다. 의사라면 ‘국제신사’이어야 한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영어 실력은 갖춰야 하고 그것은 가장 손쉽게 인재를 가를 수 있는 척도일 수도 있다.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영문 독해도 못하는 사람들이 닥터 가운입고 활개를 치고 다니는 곳이 중국 유학이었다. 물론 일부 학???출신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것은 학???출신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한 교실에 고졸?학?석사 출신들이 나란히 앉아 동창생이 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이른바 공산주의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세상 ‘갈아엎기’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면 타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노력의 산물까지 타도의 대상이 돼서야 되겠는가?
이 친구의 가슴에 남는 세 명의 스승이 있는데, 한분은 광동중의대학병원에 점혈과(点穴科)를 개설하고 만성병 환자를 진료하고 있고, 또 다른 한 분은 하남성 정주(鄭州)에 있는 황해의원에서 역시 점혈과(点穴科)를 열어 놓고 만성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마지막 한분은 섬서성 서안(西安)에서 시립병원에 기공과를 열어놓고 난치병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세분은 모두 중졸이다.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공산주의가 희한하게도 무학(無學)에 가까운 세 명의 치료사에게 닥터 가운을 입히고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는 것이다. 병 잘 고치는 의사가 진짜 좋은 의사이기 때문이다.<신진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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