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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겨울 같지 않던 날씨가 이어지더니 요 며칠 제법 쌀쌀해진 기온이 겨울임을 알게 한다. 지난 여름의 폭염은 다 잊어버리고 ‘춥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멀리 보이는 어승생악과 한라산을 덮은 하얀 눈을 바라보며 머잖아 우리가 거주하는 동네에도 눈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헐거운 옷깃을 여민다.
토요일 오후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추위를 느껴서 그런 것인지 올 겨울은 유난히 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날씨가 좋을 때도 있었지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는 여느 때보다 더 추운 느낌을 가졌었다. 겨울의 길목이라 추운 것은 당연하지만 12번의 촛불집회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정가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 더 추웠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수가 많이 줄어들면서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쌀쌀해지는 날씨를 탓하기보다는 혹시 관심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었다. 역사상 유례 없는 국정농단의 피의자들 중 누구 하나 잘못했다고 국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도 없고 양심을 고백하는 사람도 없었다. 거짓으로 일관하는 뻔뻔한 피의자들의 입을 바라보며 우리의 겨울과 주말은 몇 달 동안 거리에서 분노를 삭이고 서로의 참담한 마음을 위로하며 촛불을 들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새해가 됐는데도 국민들은 국정을 맡고 있는 수장으로부터 올 한해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비전이라든가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협조나 위로의 말을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농단의 피의자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국정을 잘 살피지 못했음을 시인하고 엎드려 사죄하기는커녕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아무런 과오가 없었다고 오히려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서 설파했다. 기자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인 노트북과 녹음기를 버리고 회견에 참석했다. 갑자기 잡힌 청와대 일정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기자들은 변명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청와대의 행동에 시시비비를 따져 묻지 않았다는 것 또한 놀랍고 실망할 일이었다. 아직도 죽은 권력의 힘에 빌붙어 다니는 가신들의 모습을 그들의 모습에서 보았다면 필자가 너무 앞서 나간 해석을 하는 것일까.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려운 민생보다 국가안보를 내세워 군대와 경찰에 협조를 요구했다. 대통령놀이에 심취해 있는 광경을 보며 아직도 그들이 제 직분이 무엇인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피의자들은 청문회나 특검의 심문에 한결같이 모른다고 하거나 처음의 말을 부인하거나 바꾸었다. 끝없이 나오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도 없다. 모두 남에게 떠넘기거나 알지도 못했다고 눈을 감고 거짓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가슴에 국민을 향한 진실함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국정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동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극성을 부려 나라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살처분된 양계의 수가 3000만마리를 넘겼다. 그나마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조류독감이 주춤하더니 이번엔 ‘인수공통 전염병 브루셀라’의 발병으로 소 86마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소비자가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보다 더하다고 느낄 정도다. AI로 인해 가장 서민적인 식품인 달걀 값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치솟는가 하면 다음 주면 설이 코앞인데 김장도 못한 채 명절을 준비할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는 주부도 있었다.
여러 악재가 겹치는데도 설 명절은 눈앞이다. 지난주엔 민속오일장에 갔더니 냉이나물이 나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냉이향기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니 제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이렇게 가까이서 소식을 알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새해다. 이제 금방 봄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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