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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힘
김영미  |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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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3  18: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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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입춘이 지났는데도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그래도 봄이라고 햇빛이 나는 날을 골라 볼품없이 자라고 있는 마당의 풀을 뽑았다. 짙은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내리쬐는 햇빛이 등을 따습게 다독인다. 고양이처럼 나른해지는 오후 내내 마당에서 풀과 씨름을 하며 새의 부리처럼 언 땅을 헤집고 뾰족이 돋아나오는 꽃잎의 부리를 본다.

항상 이때쯤이면 보는 광경인데도 볼 때마다 새롭고 경이롭다. 시기를 가리지 않고 무성히 자라는 잡초들의 억센 뿌리 사이를 헤집으며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의 부리는 가장 강한 힘을 보여주려는 듯 짙은 청록의 색을 띠고 있다. 여린 새봄을 맞이하는 색이 노란색도 연두색도 아닌 짙푸른 청록색이다. 하기야 그토록 시리고 추운 계절을 견딘 봄의 이미지는 어쩌면 굳세고 강한 청록색이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잡초는 죽지 않고 바싹 마른 상태로 추위를 견딘다. 땅 밑에서 더욱 튼실하게 뿌리를 사방으로 펼치며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한 세력 사이에서 견딘 봄의 전령들은 잡초보다 먼저 순을 틔우고 땅위로 봄을 밀어 올리기 시작한다. 강한 색으로 무장하고 자신보다 엄청난 크기의 자갈과 돌을 들어 올리며 세상에 나선다. 아직도 대지는 무디고 작은 순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깥의 날씨는 냉한 기운이 서려있지만 꽃들의 부리는 꼿꼿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손끝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쉽게 부러지는 게 새순인데 돌을 들어 올리는 힘은 돌보다 무거웠다. 돌을 머리에 이고도 새순은 머리를 숙이거나 제 몸을 휘지 않고 오히려 돌을 젖혀내고 있었다. 어쩌면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세상에 나서는 새순의 힘은 무엇보다 경이롭다. 

모진 세상을 관통하며 살아야하는 사람들에게 봄이 주는 삶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긴 겨울을 온몸으로 이겨낸 순한 것들은 엄청난 저력을 내면에 쌓아놓는다는 것을 자연은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햇빛이 들든지 말든지 봄을 기다리는 새순은 햇빛을 탓하지 않는다. 봄은 어차피 올 것이므로 새순인 꽃잎의 부리들은 혼신의 힘으로 새날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작고 여린 몸에 꽃을 품고 온갖 색의 향연을 피워낼 씨앗은 청록의 눈을 틔우면서 우리에게 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맞서지 않고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잡초의 튼실한 뿌리에 휘감겨도 스스로 그 세력에서 벗어나는 씨앗의 눈이 있기에 우리의 봄은 항상 화려할 수 있었으며 가을의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지루하다해도 우리에게는 따스한 봄날이 있다. 봄을 준비하는 것은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축축하고 어두운 땅 속에서 작은 씨앗이 내지르고 있는 함성소리를 들어보자. 길고 힘든 계절을 이겨낸 씨앗들의 푸르고 굳센 의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봄은 항상 그곳에 있고 아무리 봄이 늦는다 해도 봄은 올 것이며 봄을 제대로 준비하는 만물들은 항상 봄을 만끽한다는 사실이다.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차다. 유독 날씨가 더 차갑다는 느낌은 아직 봄을 맞을 준비를 못했던 때문이다. 가슴에 짙푸른 청록색 순을 틔울 씨앗 하나 심지 않았던 까닭이다. 내 힘의 반절이라도 소모하고 들어 올릴 커다란 열정이 없었던 것이다. 사는 일이 힘들다고 세상을 향해 탓할 줄만 알았지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일은 힘든 것이다. 며칠 따스하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가버리고 꽃의 열정을 시샘한 추위는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 그렇다고 마냥 겨울이지는 않다. 언제 우리 곁에 봄이 없었던 적이 있는가. 청록은 돌을 들어내고 봄을 움켜잡는 아름답고도 경이로운 힘이다. 머잖아 그 봄이 우리에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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