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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농 정신이 그립다
김광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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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0  17: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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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다 알다시피 촛농은 초가 타들어갈 때 녹아 엉겨 붙는 기름이다. 촛농이 생기게 하려면 당연히 촛불을 켜야 한다. 촛불이 심지를 태우면서 초는 촛농으로 녹아 흘러 엉겨 붙는 것이다. 불을 켜는 주체는 물론 사람이지만 초는 스스로를 태우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는가. 아픔 없이는 주위를 명징하게 밝힐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글에서 촛농을 ‘눈물’이나 ‘아픔’, ‘희생’ 등을 표상하는 비유물이나 상징물로 곧잘 사용했다. 한 예를 들어보자. ‘방안에 켜있는 촛불 누구와 이별하였기에 / 겉으로 눈물지고 속 타는 줄 모르는가? / 우리도 천리에 임과 이별하고 속 타는 듯하구나.’라는 시조가 있다. 이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가 썼다. 여기서 ‘눈물’은 촛농의 비유물이고, ‘속 타’는 것은 이별의 아픔(슬픔)을 상징한다. 세조의 왕위찬탈로 단종의 복귀를 꾀하던 이개는 사전에 비밀이 누설되어 죽음을 당했지만, 어쨌든 계유정난이라는 이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는 이개의 행위가 엄연히 정의로운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이로 보아 촛농이라는 말에는 맹자가 말한바 사단(四端)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 사단은 인의예지다. 인(仁)은 곧, 측은지심으로 이것은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의(義)는 수오지심으로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이른다. 예(禮)는 사양지심으로 겸손히 타인에게 사양하는 마음을 이른다. 지(智)는 시비지심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을 말한다. 혹자는 이러한 철학적 사고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사고나 정서의 망각이 오늘날 나라를 침몰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당시와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결코 이 사단 쪽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그때 사망한 고인들은 모두 가엾게 여겨 보살펴야 할 소중한 이 나라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들이다. 허나, 어땠는가. 사건을 덮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그날의 사라진 일곱 시간에 대해서도 떳떳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명히 가려서 국민들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나침판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한 고을을 다스리는 관리는 모름지기 그가 다스리는 고을의 어버이와 같다고 했다. 여기서 ‘목(牧)’은 지방장관으로 곧 어버이요, ‘민(民)’은 백성(국민)이다. 즉, 관리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기보다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어버이와 같은 존재로 보았다. 가령 백성들이 그 고을을 등지거나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확대해석하면, 어떤 상황이든 국민들이 돌아서버린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가.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말. 그만큼 도를 깨우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이 말을 ‘깨우쳤을 때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식으로 바꾸어 써보자. 이것 역시 실행이 쉬운 게 아니지만, 최소한 그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애씀이랄까 마음가짐이 작용할 때 메마른 세계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결국은 모든 것을 가볍게 여겼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국민을 농락하거나 제3자가 농단하도록 방기하거나 공모한 것이리라. 

국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진정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으려는 마음,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촛농의 마음은 아닐까. 이 찢긴 시대에 그런 정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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