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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지금 나는 한라도서관 일반열람실 북쪽 소파에 앉아 있다. 앞의 전면 유리창 위는 구름이 흘러가고 하늘과 햇빛이 환히 들어온다. 실내등은 밝혀 있지만 앞의 탁 터진 창들로 하여 이 공간은 내게 자유를 준다. 이 건물의 외벽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얼마 전 일본 나오시마 섬에서 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6)의 건축 외벽 같다.
일본 목조 건축의 전통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것이 그의 누드 콘크리트이다. 여기 한라도서관 외벽에 찍혀 있는 둥근 점들은 그래서 사람의 배꼽 같다. 만지면 따스한 기운이 돌 듯하다.
모든 여행에서 우리가 접하는 것의 대부분은 자연과 집이 아닐까. 제주에도 몇 개의 건축물이 있는 안도는 오로지 ‘여행’을 통해 건축을 배웠다. 1941년 오사카 출생으로 1962~69년까지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며 이 기간 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한다. 일본에서 여행 자유화가 시작될 무렵이니까 혈기왕성한 20대에 맞춰진 행운이었다.
나는 그의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랑』(오픈하우스, 2011)을 읽고 있다. 감성적 문체에 사고가 배어 있다. 그가 훨씬 가까이 느껴진다. 파리, 바르셀로나, 밀라노, 로마, 헤이그, 뉴욕, 베를린, 아테네, 빈, 베네치아, 러시아…. 그는 돈이 모이면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가 긴장과 불안 속에서 건축물들이 휘황한 도시를 돌아다녔다. 이것이 그의 오늘을 있게 했다.
아, 난 그 시절 어찌했나. 오랜 시간을 섬에만 있었던 나는 삶의 내공이 부족하다. 그래 이즈음 목말라 하듯 여길 자주 뛰쳐나간다. 『건축을 꿈꾸다』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읽어 볼만한 그의 책이다.
나오시마 섬 바닷가 언덕에 있는 지중미술관에 간 날 햇빛은 밝고 따사로웠다. 바로 앞 바닷물은 감청색으로 잔잔했다. 마치 제주의 남쪽 송악산 언덕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거기 안도 다다오는 땅 속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누드 콘크리트로 된 긴 통로를 지나서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 제임스 터렐이 만든 빛 작품들이 나타났다. 평면의 파란 화면에 손을 넣으니 공간이었다. 잘라낸 하늘의 빛은 시간과 기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일출이나 일몰 무렵에는 벽이 빛으로 물들어 하늘의 색이 완연히 달라진다. 그러니 관람객은 매번 가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또 다른 방으로 스르르 들어가니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2×6m ‘수련 연못’을 비롯한 5개의 수련이 사방 벽을 차지하고 있다. 원작이다. 새하얀 벽면의 방에는 부드러운 자연광이 들어온다. 그의 그림이 저 프랑스에서 머나먼 일본의 작은 섬에 와 다시 빛을 받고 있다.
바닷가에는 커다란 노란 호박, 빨간 호박의 모형이 있다. 우리가 간 한 마을은 마을 전체를 예술화 하여 거기서도 빛과 어둠이 함께 했다.
돌아와서 나는 집 앞에 수(樹)평선이 있고 눈을 들면 한라산 이마가 바로 보이는 내 집 거실의 등을 껐다. 그러니 시시각각 창밖의 자연이 빛에 따라 변하였다. 실내등이 만드는 인위적인 빛을 버리니 비로소 빛이 내게 들어왔다. 빛과 어둠. 그 명상의 공간을 새로이 내게 만들어 주었다.
안도는 처음 복싱 선수였다. 그러다 우연히 고서점에서 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 꽂혔다. 그를 만나러 파리에 갔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안도는 코르뷔지에를 알고 있었으나 코르뷔지에는 안도를 몰랐다. 코르뷔지에가 있어서 안도라는 건축가가 나왔다. 릴케, 예이츠, 프레베르, 박용래, 김종삼이 나를 몰라도 나는 그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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