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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강은미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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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7  18: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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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얼마 전 선흘리 마을 안길을 걷게 되었다. 낮은 지붕에, 낮은 돌담, 돌담 아래 마농꽃, 고즈넉한 돌담들로 둘레를 친 마을 안길이 소박하고 참 예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 건 마을 안에 있는 선흘분교 현판에 새겨진 글귀였다. 차츰차츰,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주로 교훈은 ‘바르게, 힘차게, 지혜롭게’의 의미가 담긴 문구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런데 ‘차츰차츰’이라니, 걷는 발걸음마저 조심스럽게, 조용히 내딛게 하였다. 아마, 대한민국 교훈 콘테스트가 있다면 단연 대상감이다.
차츰차츰이라는 말은, “사물의 상태나 정도가 점차로 진행되어 가거나 변화하는 모양”을 뜻한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말이지 않을까. 특히 제주도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다방면에서 제주도의 발전 속도는 과히 전국 최고다. 난개발도 빨리빨리, 도시화도 빨리빨리, 건물 올라가는 속도도 빨리빨리, 땅값?집값 오르는 속도도 빨리빨리…. 모든 게 빨리빨리 진행되다보니 이러다가 죽음도 빨리빨리 오는 게 아닌가 하고 두렵다. 인간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욕망은 죽음의 속도를 늦추거나 불로장생하는 것일진대 이러다간 죽음의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집어삼킬 태세다.
얼마 전 ‘시(詩)와 함께 하는 시민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시를 감상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들을 시나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글을 써서 나누는 모임이었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가운데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시를 비롯한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일상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하였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없다는 하소연으로 모아졌다. 시간이 없어서 일상을 관찰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길래 하루 몇 분 무언가를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그리 어렵다는 것인가.

일상에 대한 관찰이 이루어져야 나와 내 주변, 일상, 사회, 삶에 대한 사유가 가능하다. 사유가 없는 글은 수다스럽거나 넋두리가 되는 등 별 의미 없는 글이 되고 만다. 그러니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하루에 몇 분 정도는 가만히 특정 대상이나 상황, 감정에 몰입해보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습관이 안 되어서 그럴 수 있지만 그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회사 일, 집안 일, 아이들 챙기는 일, 각종 사교모임, 운동… 등 이 모든 것이 ‘일’이 돼버린 시대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상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그 무엇, 노동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사는지 나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남는 것은 공허함이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은 차츰차츰, 즉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폴 라파르그는 그의 저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우리가 진정 되찾아야 할 것은 ‘일할 권리’가 아니라 ‘게으를 수 있는 권리’임을 주장한다. 현대인은 ‘위험’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노동, 여가, 운동, 일상생활마저 전투적으로 함으로써 그 모두가 해야만 하는 노동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중독’, ‘운동중독’, ‘여행중독’이라는 말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진정 되찾아야 하는 것은 게으를 수 있는 권리이다. 일 안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적어도 적정시간만큼만 일해도 살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인간에게 쉴 수 있는 권리, 즐길 수 있는 권리,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같은 얘기지만 이런 세상이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지지 않을까. 아, 참으로 인간다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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