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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져가세요
고해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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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5  17: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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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주방 창가의 무순이 시들고 있다. 겨울 끝 무렵 시골서 가져온 것 중 주먹만 한 무의 잎 부분을 작은 접시에 앉혀, 물로 채워 줄곧 살핀다. 어느새 연초록이 날로 짙더니 눈길 뜸한 사이, 가운데 여린 잎 빼고 시들어 쉬 일어서질 못한다. 뒤늦은 물 보충으로 되찾아가는 기력이다.
‘그냥 가져가세요’
떼어낸 노트 한 장에 채워진 손 글씨가 정겹다. 며칠 전 일이다. 잎을 막 잘라낸, 겉흙 채 마르기 전 무가 붉은 플라스틱 대야에 수북하다. 101호 아주머니가 빌라 뒤편 텃밭에서 키워낸 것을 통로 입구에 내놓은 것이다. 실은 풍경 자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전이된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올라가며 본 첫 광경이 월요일 아침까지 그대로다. 저녁 늦게 들어오며 살펴도 누구 한 명 눈길 준 흔적조차 없는 듯하다. 쪽지에 흙을 묻혔을 동그마한 무들조차 지나는 이들을 찬찬히 지켜봤을 법하다. 모두가 지쳐있다는 표정들이다. 아무리 실하지 않기로서니 변동 없는 상황에 꽤나 켕기기 시작한다. 마트에 진열된 번듯한 상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왜소한 진품들이지만 좀체 반응 없는 인정에 몸 둘 바를 모른다. 잠시 동안 머물다가 맨 위의 두 개를 흔쾌히 집어 들고 발길을 옮긴다. 텃밭을 탈탈 털어 모조리 나누려는 마음조차 관심의 대상이 못 될 셈인지, 이웃의 성의를 가볍게 치부하는 것만 같다.
가끔씩 아들 사는 집을 찾는 서울 아주머니의 방문, 텃밭에 일을 종종 만들어놓고 가는 편이다. 그간 상추나 옥수수를 심곤 ‘따다 드세요’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는 손바닥만 한 공터도 귀할 테니 두어 평 정도의 터를 놀리는 게 아까운 게다. 아주머니로서는 결과물을 내놓아 공유하고픈 장, 늘 쳇바퀴의 일상에 매몰 되가는 내게는 신선한 충격쯤이었다.
‘인생의 비극이란 사람들이 사는 동안 가슴과 영혼에서 숨을 거둔 것들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아니어도, 최소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이웃에 대한 예의이자 정이다.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아주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며 내놓았던 것을 슬며시 치워내실 것인가에 이른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이라면 흐뭇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최근에 입주한 댁이라 통로의 사람들과 그리 살갑지도 않기에 그리움을 나누려는 시작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소통이 없는 이웃이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을 누구 하나의 응대도 없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마음은 나눠야 제맛이듯 무릇 이웃 노릇도 떠올리게 된다.
온 동네가 공사 중이라 연일 시끄럽다. 앞쪽은 포크레인이 터파는 소리, 뒤쪽은 빌딩 올리는 소리로 시국만큼이나 조용한 날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무장된 수장의 행로였다면 98주년 3.1절이 가라앉은 분위기, 후퇴하는 민주주의로 곱씹을 일인가. 소시민이 이웃에게 배려하려는 의지만큼 자리한 대통령이었다면 해본다.
국경일인데도 동네에 태극기가 많이 안 걸려있다. 대통령으로서 처신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억지 무리의 탄핵 반대로 사용되던 태극기 탓은 아닌가. 국민의 웃음조차 그냥 가져가버린, 삼일절의 스케치다.
“행복, 그냥 가져가세요” 할 대통령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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