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얼마 전 꽃샘추위가 한바탕 기승을 부렸다. 봄이 왔으나 봄이 온 것 같지 않았다. 봄이 왔다고 반가운 나머지 봄옷으로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가 호되게 된서리를 맞았다. 바람이 웬만한 겨울 날씨보다 더 매섭고 혹독했다. 더욱 봄에서 겨울로 이동하는 환절기여서 감기몸살에 걸리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꽃들도 서둘러 피어나다가 잔뜩 움츠러드는 모양새였다. 그 순간은 이런 상태가 참 오래 갈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허나,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도 사계절은 유효한 것.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듯,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꽃샘추위도 당분간 몸을 사렸다. 몇 차례의 꽃샘추위를 더 보낸 뒤 곧, 온갖 사물이 만화방창하는 진짜 봄은 올 것이다. 어느새 거리엔 봄빛이 넘실거린다. 봄은 역시 좋다. 무언가 가슴 벅차고 화사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에 감미롭게 휘감겨드는 느낌, 먼 곳에서 기다리는 소식이 소리 없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 등, 그런 느낌들과 숨결을 나눌 수 있는 봄은 그야말로 담녹색 소년의 계절이다.
정말 이 봄에는 그동안 앓던 시대의 통증들을 다 치유하고 봄을 봄답게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겨울 내내 모두들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동안 정신적인 충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캄캄한 동굴의 미로 속을 온통 불안과 불쾌감 속에 헤매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불쑥 치솟는 분노 속에 정신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지고 마음은 남루해졌다. 한반도 남쪽나라를 강타한 최순실 게이트가 우리를 비참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