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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헌법, 대통령을 파면했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사건’에 대해 마침내 ‘인용’ 결정을 내렸다. 3월 11일자, 탄핵 인용 하루 뒤 집에 배달된 모 일간지는 이처럼 ‘헌법이 대통령을 파면했다!’고 벼락 치듯 외치고 있었다. 나는 하루 전 격동과 감격을 되새기려는 듯, 이 신문 1면 전체에 실린 ‘선고 요지’를 읽고 또 읽었다.
6,600자 선고발표문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법·위헌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고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나는 문득 녹두장군 전봉준의 거병과 개혁운동을 떠올렸다. 123년 전인 1894년(고종31년), 전라도 고부에서부터 나부끼던 동학농민군의 기치와 경천동지할 함성이 오늘 일인 듯했다. 이는 이미 지난 2월 광화문 촛불집회 때 보았던 깃발과 함성, 피맺힌 부르짖음 위에 겹쳐졌던 장면이기도 했다. 내가 동학농민혁명의 실체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의 봄으로 일컬어지던 1980년 3월 초, 활동하고 있던 대학신문에 ‘한국사에 나타난 민중운동’을 연재하기로 기획하면서였다. ‘3·1운동과 민중의 의지’를 첫 연재로 해 ‘동학혁명’ ‘한국사 속의 민중의 몫’ ‘현대의 민중운동’ 등 모두 여섯 번에 걸쳐 학술논문을 게재해 독자들인 재학생, 교직원, 동문들에게 민중과 민중의 힘이 우리 역사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성숙, 발전시켰는가를 돌아보게 하고 1980년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치, 역사적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쟁취해야 할 민주화 운동의 가치와 사명을 재인식하자는 의도가 녹아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연재물로 ‘동학혁명’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시대상황이 18년 1인 독재가 끝난 시대상황 덕분이기도 했다. 혁명과 대중이라는 용어조차 금기시되던 압제의 시대가 거짓말처럼 막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혁명의 절정은 고부에서 거병한 이후 전라도 53개 군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에 나선 것이었다. 양반 중심의 봉건 사회를 혁파하고, 신분 차별을 없애며, 인습에 갇혀 사는 여성들을 해방시켜 농민의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자는 것이 골자였으니, 요즘 시각으로 봐도 빼어난 민주요 진보 사상이다.
그러나 동학혁명군은 우금치와 공주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 패색이 짙어졌고 녹두장군 전봉준마저 1894년 12월 순창에서 동지의 밀고로 붙잡히고 만다.
주목할 것은 ‘전봉준공초’(체포 후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법정 심문 기록)에 나타나는 녹두장군의 당당한 외침이다.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백성의 원성이다. 민병을 일으킨 것은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함이요 백성의 삶에서 폭력을 제거코자 했을 따름이다” 이렇게 거병 이유를 밝혔고,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는 심문에는 “진리를 펴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한가? 충의(忠義)란 본심(本心)이다. 그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그대는 그것을 허락을 받고 치우겠는가?”라고 했다.
나는 감히 2016-2017 대한민국 국민이 분연히 일어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세우고 헌법수호를 통해 적폐청산의 대장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된 힘은 동학농민혁명부터 3·1운동, 4·19혁명으로 이어져온 배달겨레의 혁명정신이 기어코 질량불변으로 다시 불타오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녹두장군의 혁명정신까지 되돌아보게 되는 오늘, 아직도 우리 삶과 역사에서 왜곡과 폄훼로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장과 사실이 있다면 다시금 ‘파사현정의 질량불변에 힘입어’ 바로 세우고 올곧게 기려야 하리라. 제주에서는 4·3이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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