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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을 나눠주던 여인
김순진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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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1.0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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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 스토리문학의 주간이신 지성찬 시인과 지하철을 타고 제주 출신인 현기영 작가를 취재하러 분당으로 가는 길이다. 지 선생은 일산에 사시고 필자는 은평구에 살기에 중간 지점인 녹번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둘러 약속 장소에 가니 지 선생은 벌써 오셔서 신문 가판대 앞에 서서 신문을 읽고 있다.
이윽고 수서행 3호선 전철이 온다. 지 선생은 경로석에 앉고 필자는 서있으려니 지 선생께서는 “여기 앉아요. 어른이 오면 그때 비켜주면 되지”라시며 내 팔을 이끄신다. 가야할 거리가 제법 멀기에 못 이긴 척 앉았다. 세 자리 중 한 자리가 비었는데, 50세 쯤 된 한 여인이 앉을까 말까 망설이다 엉덩이를 들이민다. 덩치 큰 여인의 공격에 나는 움찔하며 어깨를 오므린다. 시집을 꺼내 읽으려고 가방을 뒤척이니 그 여인과 살이 맞닿아 야릇한 기분이 든다.
그 여인도 핸드백을 뒤척이더니 뜯지 않은 껌을 한 통 꺼내든다. 그러더니 일어서서 마주 보이는 건너편 자리로 가 “껌 하나 드릴까요?”라면서 세 사람에게 껌 한 개씩을 건넨다. 건너편 사람들은 받을까말까 망설이는 눈치로 껌을 받아든다. 그리고 바로 뜯어 입에 넣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다. 그 여인은 도로 내 옆에 앉더니 우리 두 사람에게도 껌을 건넨다. 마지못해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건네고 껌을 받아드니 그 여인은 핸드백을 들고 옆 칸으로 옮겨간다.

그 여자가 다른 칸으로 건너가자마자 나는 집게손가락을 펴 내 머리를 향해 두어 번 돌리면서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라고 지 선생께 물으니 지 선생은 “안 그럴 수도 있어요.”라고 하신다. 순간 내 입에서는 “그렇구나! 내가 너무 많이 닫혀 있었구나!”라는 반성의 자탄이 흘러나왔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들 역시 그 여자를 정신이 나간 여자거나 껌에 수면제를 탄 것으로 의심하는 눈치다.
우리가 너무나 닫혀있던 게 분명했다. 시골에서는 논두렁에 앉아 밥을 먹다가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더라도 불러서 밥을 먹이던 시절이 있었다. 막걸리 한 잔 하고 가라고 오히려 큰 소리로 불러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다. 어떤 공익광고에서는 새로 이사 온 아이가 옆집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며 떡을 들고 서있으니까 옆집 여인이 문을 빼꼼히 연 채로 “우리는 떡 안 먹어.”라며 어린이의 호의를 무시하던 광고가 생각난다. 껌 하나를 건네는데, 돌았다거나 약을 발랐을 거라는 의심을 가지게 된 우리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기차여행을 하거나 버스 여행을 하면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달걀이며 껌은 의례히 나누어먹는 음식이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 먼 길을 가면서 대화를 하다보면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서로 가지고 가던 물건을 나눠주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맑고 순수한 영혼의 여인을 정신 나간 여자로 생각하던 내가 한심했다. 수면제를 발라서 우리의 금붙이를 노릴 거라는 사회적 통념에 개탄했다. 나는 그래도 순수함을 비빌 언덕으로 삶고 사는 작가가 아닌가.
3호선에서 분당선으로 전동차를 갈아타고 약속장소로 가니 현기영 선생이 먼저 나와 계신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어떻게 대화의 서두를 어떻게 꺼낼까 걱정하다가 조금 전에 있었던 껌을 나눠주던 여인의 이야기를 하자 현기영 선생은, “그래요.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많이 닫혀 있어요. 상대방의 호의를 전혀 고맙게 여기지 않는 사회가 되었지요. 내 마음을 열지 않는데 무슨 사랑을 전하겠어요.” 하신다. 마음을 열자. 그리고 상대방 호의를 받아들이자. 내가 먼저 베풀려고 하는 것도 좋겠지만 상대방의 호의를 반갑게 맞이하자. 그것이 정다운 사회를 유지하는 지름길이 아닐까?<김순진/수필가.스토리문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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