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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작전으로 돌아선 토벌진압
[제주신문] 제주 9연대장의 지휘관을 김익렬에서 박진경으로 교체한 인사명령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미군정의 정책이 평화에서 토벌로 선회한다는 뜻을 내포했다. 김익렬 중령과 김달삼이 만나 어렵게 모색한 평화 협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음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조병옥 부장이 허위 증언에 딘 소장이 오판을 하여 수만 명의 인명 피해를 입힌 것이며,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질 일이었다.
딘 장군은 제주 방문 직후 연대장을 교체했을 뿐만 아니라 수원에서 갓 창설된 11연대 1개 대대를 차출, 제주에 파병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박진경 연대장은 기존 9연대 1개 대대와 부산 5연대에서 차출된 1개 대대, 그리고 11연대 1개 대대 등 모두 3개 대대 병력을 확보, 본격적인 토벌전에 나섰다.
결국 <제주 4·3사건> 직후에 김익렬 중령이 이끄는 국방경비대 9연대의 경우처럼 토벌보다 선무 공작을 앞세우는 목소리는 조병옥을 비롯한 경찰의 강경 진압 요구에 묻혀버렸다.
미군정은 조병옥의 손을 들어주었고, 딘 군정장관은 김익렬을 경질했고 토벌은 강경 진압 작전으로 진행되었다. 제9연대 내에서 토벌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세력이 제거된 뒤에는 토벌대 내부의 마찰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이후 시작된 초토화 작전에서는 군이 주도하고 경찰이 돕고 서북청년회가 보조하는 식의 역할 분담과 공조 활동이 잘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조병옥의 <제주 4·3사건>에 대한 인식은 정부 수립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여순 사건을 진압하자 제주에 대대적인 토벌에 들어간다. 이것은 초토화 작전으로 이루어졌다. 극우 세력만 정권에 참여함으로써 기반이 취약했던 이승만 정권에게 있어 남한에서 유일하게 단독 선거를 저지시켰던 제주는 정통성을 가로막는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국제적인 이목 때문에 곤혹감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진압해야 할 대상이었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
박 중령은 전임 연대장 김 중령과는 달랐다. 부대원들을 직접 독려하며 토벌 작전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런 적극적인 토벌전은 옥석을 가리지 못한 채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등 부작용도 속출했다.
박진경은 제주 부임 한 달여 만에 토벌 작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령으로 고속 승진했다. 그런데 승진을 축하하며 파티를 하던 날 밤에 부하의 손에 암살(6월 18일)당하고 만다.
1948년 6월 18일 새벽에 직접 총을 쏘아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한 사람은 손선호 하사로 밝혀졌다. 8월 9일 고등군법회의실에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의 초점은 연대장 암살의 동기와 배후를 밝히는 데 맞춰졌다. 이 자리에서 고등군법회의 검찰관은, 문상길 중위가 무장대 책임자인 김달삼의 사주를 받아 암살 계획을 세웠으며, 손선호 하사가 권총으로 박 대령을 암살했다는 내용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문상길 중위는 법정에서 <김달삼 지령설>을 부인했다. 문상길은 동족상잔을 피해야 한다는 김익렬 전 연대장의 방침에 찬동했기 때문에 김익렬 중령과의 회견을 추진하기 위해 김달삼을 만난 적은 있으나 그의 지령을 받아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문상길은 이어 “심리조서에 서명 날인한 것은 전기고문 끝에 눈을 막은 후 조서에 대한 기록 내용 여하를 모르고 강제적으로 무조건 날인한 것으로 이 법정에서 진술한 것이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피고인들도 한결같이 김익렬 전 연대장과 박진경 연대장의 작전을 비교하면서 무모한 토벌전을 막기 위한 것이 암살의 동기라고 밝혔다. 신상우 하사는 “박진경 대령은 동포를 학살하고 진급했다. 미군인이 직접 위장을 달아주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직접 박진경 연대장을 저격한 손선호 하사는 “3천만을 위해서는 30만 제주 도민을 다 희생시켜도 좋다고 역설하여 실제 행동에 있어 무고한 양민을 압박하고 학살하게 한 박 대령은 확실히 반민족적이며 동포를 구하고 성스러운 우리 국방경비대를 건설하기 위하여는 박 대령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고 진술했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에 관한 <김달삼 지령설>은 4월 28일 김달삼과 평화 협상을 했던 김익렬 전 연대장에게까지 파문이 확산돼 김익렬 중령은 배후 혐의로 연행됐다. 그러나 김익렬 중령은 재판정에 나와 “모든 군사 행동은 당시 최고 작전회의 참모이던 드루스 미군 대위의 지휘였고 박 대령 살해는 나는 전혀 모른다.”며 무장대와의 협상을 비롯한 모든 군사 행동이 미군의 지휘 아래 진행됐음을 밝혔고, 경비대총사령부 총참모장 정일권 대령도 이에 동의함으로써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문상길 중위를 비롯해 신상우·손선호·배경용 하사관 등 4명에게 총살형을 언도했다.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결국 9월 23일 경기도 수색의 한 산기슭에서 총살형이 집행됐다.
문상길은 집행 직전 마지막 유언 기회를 주자,
“스물세 살을 최후로 문상길은 갑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군대입니다. 마지막 바라건대 ×××의 ××아래 ×××의 ××아래 ××를 하는 조선군대가 되지 말기를 바라며 갑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선호는 ‘혈관에 파도치는 애국의 깃발…’로 시작되는 군가를 부르다가,
“오, 하나님이시여!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국방군이 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를 올리고 총살되었다.
1 1연대 후기 진압 작전
미군사령부는 박진경 연대장의 후임으로 연대장에 최경록 중령을,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을 임명하였다.
최경록 연대장은 부임하던 날부터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펼쳤는데, 이 무렵 무장대는 활동이 거의 없었다. 무장대가 공세의 고삐를 늦춘 채 행동을 중지한 까닭은 그 동안 사태를 관망해 오던 경비대가 본격적인 작전에 나서자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암중모색으로 보인다.
경비대는 대대적인 수색 작전과 주민 연행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무장대의 대응이 없는데다가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라는 각계의 압력이 거세게 일자 ‘작전 행동 보류’를 선언했다. 최경록 연대장은 교통 차단 해제, 어획 금지 해제, 통행 시간 연장 등의 조치를 취했고,
“이후는 특수한 경우 이외의 작전 행동은 보류하나 경찰 및 각 행정기관에 협력하여 치안 회복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로써 제주 사태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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