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깅이죽

봄비가 부슬거리는 날은
제주도 바닷가에 가고 싶다
성산포나 법환리 잔돌밭에 나가
등 척척하도록 깅이 새끼들을 잡고 싶다

한 멱서리 깅이 새끼들 잡아다
초고추장에 버무려 회쳐먹고 싶다

오늘처럼 봄비가 부슬거리는 날은
마을 안 망다리 잠녀들도
저희들끼리 숨어서 좁쌀 깅이죽 맛이 들었겠다

나도 훌쩍 비행기를 타고 싶다.

-송수권의 ‘깅이죽’ 일부

제주에는 1목 2현의 행정체제가 오랜 세월 유지돼 왔었다.

그런 연유로 언어도 좀 다르다. 정의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제주목이나 대정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전혀 처음 듣는 단어들을 접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돗통을 ‘통시’로, 쥉이를 ‘중이’로, 정기를 ‘빙떡’이라고 우긴다. 내가 ‘겡이죽’ 하면 ‘깅이죽’으로 응수해 오는 것이다.

시인은 어느 봄날 제주에 왔다가 ‘돌레방석’으로 게를 잡는 모습을 보았나보다.

바다와 잠녀들이 봄비 속에서 ‘날 잡아봐라’하며 노는 것도 같고, 가족끼리 도란도란 자연의 일부가 된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

누군들 이쯤이면 좁쌀 깅이죽에 홀려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겠는가. 나도 봄비가 오면 노란 주전자 들고 위미리 바닷가를 휘갈아 다녀야겠다. (오승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