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홀씨 하나가 바람에 날려가다 내 옷소매 위에서 비행을 멈춘다. 보나마나 잘못된 착륙이다. 홀씨는 어느 안전한 땅에 내려앉았다가 내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목적과 다른 엉뚱한 곳에 내려앉고 말았다. 나는 그 홀씨를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흙 위에 사뿐히 내려주었다. 그러면서 혹 인연이 닿는다면 내년 그 어느 봄날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넌지시 속삭여줬다.
내 옷소매는 생명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공간이다. 당연히 이 무생명적 공간에서는 홀씨의 아름다운 계획과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다. 홀씨에게는 홀씨에게 알맞은 부드럽고 기름진 땅이 필요할 것이다. 그보다는 더 아슬아슬하고 험한 곳일지라도 괜찮다. 적어도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홀씨가 생명성이 강한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다면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활짝 저의 생명을 꽃피워내고 말리라.
이렇듯 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는 공간은 중요하다. 비록 여기서는 홀씨 하나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홀씨가 수천수만 수억 개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 홀씨를 비롯한 모든 꽃씨들과 열매들을 포괄한 자연이 더 이상은 생존할 곳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내 옷소매와 같은 무생명한 곳에 터전을 잡았다고 생각해보자. 포장된 도로와 건물과 썩은 물과 오염된 공기 속에 있다고 거듭 생각해보자. 보나마나 숨 막혀서 더는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