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어렸을 때 더운 여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시원한 냉국수도 생각나지만, 내 본격적인 국수 탐닉은 중1 때 제주 동문시장 국숫집에서부터이다. 고2 여름, 이호에 사는 같은 반 ㄱ과 그 동네 바닷가로 가 현무암 바위 위에서 처음 소주를 한 잔 마시곤, ‘이건 내가 평생 좋아할 거’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행해 왔듯이.
육지에선 잔치국수라고 하는 그 멸치국수의 맛에 이끌려 국수와 함께 하여 온지도 어언 50년이다. 동문시장 국수를 죽 애호해 오다 20대에는 제주시 구 코리아극장 앞 할머니의 국숫집으로 옮겨갔다. 특유의 깊은 멸치 국물과 쫄깃한 면발, 작은 튀김들의 고소한 맛은 소라다방을 근거지로 한 우리를 자주 거기로 향하게 했다. 작은 냄비의 국물을 늘 바닥이 날 때까지 들이켰으니. 바닷가 용두암 부근의 제주대학에 다닐 때는 학교 앞 거리에 국숫집이 몇 개 있어서 멸치국수 위에 얹어주는 돼지고기 두어 점의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직 고기국수가 제대로 자리잡기 이전이었다.
90년대 들어서 제주시 삼성혈 부근에 국숫집이 하나 둘 생겨나더니 이젠 아예 거리 이름을 ‘국수문화거리’라고 하여 국숫집이 무려 스물이 넘는다. 멸치국수, 고기국수, 멸고국수, 비빔국수 등 메뉴가 다양하여 국수를 먹으려는 도민, 관광객이 몰려들지만, 번호를 받고 기다리거나 붐비는 곳은 몇 군데 안 된다. 제주가 단일 지역으론 국내 국수 소비량이 제일 많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길 아내와 자주 가는데, 아내는 멸치국수, 나는 늘 고기국수를 시킨다. 나는 ‘내게서 죽음은 고기국수에 막걸리 한잔 못 먹는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난겨울 위선종 진단을 받고 밀가루 음식과 술을 삼가는 동안 고기국수에 막걸리 한잔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