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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 그대, 제주어로 모살 방풍(모래 방풍)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가?
앎이란 것이 배워도, 배워도 미처 알지 못하고 끝내 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손녀를 본 이 나이에 와서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얼마 전 고사리 철에 새벽마다 동쪽을 향해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가 철이 다할 즈음 동료가 성산포에 가서 딱 30분만 모살 방풍을 캐자는 것이다.
모살방풍? 난생처음 들어 보는 단어라는 나에게 그 나물은 무쳐 먹어도 맛있고 장아찌를 해 먹어도 맛이 있다는 바람에 일단 아침 해도 볼 겸 성산포를 향했다.
성산포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하얀 모래밭은 뭍에서 온 관광객들이 반할만도 하였다.
준비도 없이 온 맨손인 나에게 묵은 식칼을 들이밀며 모래밭에 납작하게 하늘을 향해 누운 짙은 초록색 잎을 알려 주며 이것이 모살 방풍이니 칼끝을 집어넣어 캐라는 것이다. 나물을 캐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딘 칼끝을 모래밭 깊숙이 넣어서 칼끝을 한 두어 번 흔들어 주면 초록 잎 방풍 나물이 올라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캐었다. 30분을 캐어도 한 줌밖에 얻지 못하는 아주 작은 잎이었지만 정성스럽게 다듬고 씻어서 방풍 사진을 을 밴드에 올렸더니 그걸 본 친한 작가가 걱정스레 연락이 왔다.
자기가 성산 쪽 고향인데 이런 나물을 먹는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아무것이나 먹지 말라고.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런! 갯방풍이었다.
제주에서는 모래밭에서 자란다 하여 모래방풍.
풍을 예방도 하지만 치료도 하는 약초나물, 그것도 아주 귀한 나물로 바닷가 모래밭에서 바닷바람과 소금기를 먹으며 생존하는 신이 인간을 위해 하사하신 고급 선물이었다.
봄에 캔 나물은 된장에 무쳐 먹으면 기가 막힌다는 말을 들었지만 5월이 막바지인 초여름이라 좀 억세지 않을까 하여 장아찌를 담갔다. 처음엔 향이 너무 진해서 먹을 엄두도 나지 않아서 여기저기 조금씩 나눠 줘 버렸다.
캐는 재미에 운동 삼아 새벽이면 반복되는 작업.
어느 날 삼겹살에 먹으면 맛있다는 후배의 말에 힘입어 시도해 보았다.
이런, 이런! 까다롭기로 소문 난 내 입에 착 감기는 맛이라니, 아침에 먹은 나물 향이 온종일 몸에 배어 솔솔 풍기는 특이한 경험에 한 번 더 놀랐다.
하도 귀한 나물이라 강원도 고성군에서는 채취해 가지 못하도록 단속까지 하는 귀한 나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음부터 나는 뿌리까지 캐 오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물론 바위틈에서 자라는 식방풍과는 엄연히 다르다. 잎이 너무 작아 쌈을 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르는 분들은 나에게 욕심이라고도 하고 부지런이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잠 좀 덜 자고 무상으로 공급받는 방풍이나 고사리를 채취하는 일이 욕심일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본다. 장아찌를 만들어 나누고 싶은 이웃과 조금씩이라도 나누면 또 그것이 더불어 사는 삶 아닌가.
신이 인간에게 어떤 식물을 줄 때는 값없이 건강하게 살라고 주시는 것인데… 나가서 조금만 움직이면 천지에 다 먹을 것들인데, 이런 귀한 선물을 캐지 않고 다 썩게 내버리는 것이 과연 옳고 정당한 일일까?
고사리 철에는 누구나 부지런히 움직이면 산과 들에 온통 무상으로 주는 먹을거리들로 나가서 손만 뻗으면 온통 건강한 먹거리들인데. 왜 그걸 캐오고 다 오는 것이 욕심일까? 물론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남겨 둔 뿌리가 다시 새잎을 내어 주기를 바라고, 이미 꽃을 피운 방풍에게는 씨앗이 맺혀 번식해 주기를 바라며 내일 새벽에 어쩌면 다시 성산포 바닷가를 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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