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는 진이 누나를 생각나게 한다

누나라는 말 속에는
밭이 있고, 언덕이 있고, 돌담이 있습니다.

오늘 나는 서귀포의 돌담길을 거닐다가
누나라는 말에 너무나 어울리는 풍경이다 싶어
누나! 하고 한번 불러 봤습니다.
내게 없는 누나가
저 돌담의 오렌지밭 한가운데서 오렌지를 따다가
광주리를 팽개치고 달려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지요.

-김영남의 ‘서귀포는 진이 누나를 생각나게 한다’ 일부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이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겠다’는 김영남 시인.
그의 시 ‘모슬포에서’는 가히 송악산의 깎아지른 벼랑이 빚어낸 절창이라 할만하다.
지난해 그와 전화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지금껏 써왔던 작품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은 단연 ‘모슬포에서’와 ‘서귀포는 진이 누나를 생각나게 한다’입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공교롭게도 시의 무대가 모두 서귀포다.
서귀포가 그의 대표작 두 편을 낳은 것이다.
돌담길을 거닐다가 문득 ‘누나!’하고 부르면, 내게 없는 누나가 오렌지를 따다가 달려 나오는 곳, 뒤가 없는 질문을 연방 해대다가 끝내는 눈 주위가 귤밭이 되어버리는 곳, 여기가 바로 서귀포다.
그대 지치거나 외롭거나 억울할 땐 서귀포로 오시라, 아무 곳에서나 부르면 응답하는 따스한 서귀포의 품이 그대의 누나다.

오승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