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방학은 즐겁다.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됐지만, 방학은 여전히 즐겁다. 하루에 수업을 5시간 이상 하다보면 너무 힘들다. 연강 후에 1시간 이상은 쉬어야 하는 생활을 16주에 걸쳐 반복하다 지내다 보면 성적처리를 하고 난 뒤에 내 입에서 ‘쉬고 싶다’는 말이 튀어 나온다. 연구나 학생지도, 연수, 교육기부, 논문작성 등으로 방학 때가 학기 중보다 더 바쁘지만, 강의를 잠시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방학은 즐겁다.
내가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초등학교부터 다양한 방학생활을 지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탐구생활’ 책자와 일기가 우선 떠오른다. 개학을 앞두고 밀린 일기와 숙제를 하느라 밤을 새기도 했었다. 여름방학에는 비가 오지 않을 때 농약을 주거나 풀을 뽑거나 담배나 고추를 따기도 하면서 농사짓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고, 장마철로 비가 와서 수해가 나는 경우에도 농사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속으로는 좋아했던 나쁜 마음도 가지기도 했었다. 교수가 되어 농업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현재의 모습은 하나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겨울방학이 되면 비료포대에 볏짚을 넣어 만든 간이 썰매로 언덕배기에서 놀던 기억과 참새를 잡기 위해 새덫을 만들고, 연살을 깎아 만들어 날리던 연의 기억도 생생하다. 눈이 온 다음 날에는 새벽 일찍 나가셨던 아버지의 손에 들린 산토끼와 맛있게 먹었던 토끼탕도 떠오른다. 집에서 등교했던 중학교나 자취생활했던 고등학교의 방학도 초등학교 시절과 비슷했다.
대학생이 돼 대도시 기숙사에서 타지생활을 하면서 3학년 겨울방학과 4학년 여름·겨울방학을 제외하고는 항상 귀향해서 농사일도 돕고, 시골 생활을 보냈다. 대학생이다보니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상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3학년 여름방학에는 시작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텐트를 가지고 친구 2명과 함께 전국일주를 1주일간 다녔다. 3학년 겨울방학에는 대학원 진로 준비로 대전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당일로 다니면서 선배의 지도로 전공학습(스터디클럽)에 참여했다. 대학원에 합격한 뒤의 4학년 겨울방학 때는 후배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씩 서울에 올라갔었다.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왕복 6시간을 들여 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던 그 때는 지금에 생각해보면 참 순수했다. 4학년 여름방학은 대학원 준비로 기숙사에 남아 부산 친구와 함께 고시원에서 매식하면서 대학원 시험 준비를 했다. 영국왕립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면서 ‘자본론’을 집필했던 칼 막스를 흉내 내보자며 도서관에서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이어서 기숙사에서 2시까지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고3시절보다 열심히 대학교 4학년 기간을 지내다보니 대학을 졸업하면서 도서관을 향해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시절이 그립다. 몇 달 전 지식재산 관련 협약(MOU) 체결로 모교를 방문했을 때, 도서관에 들어가 내가 앉았던 위치에 잠시 앉아보면서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