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돌담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으면서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멈추어 서지 않는
그를 나는 무엇이라 이름 부르리

그와 함께 먼 길 걸어가다 보면

들어앉는 그를 정말 무엇이라 부르리
씨뿌리던 어머니가 있었고
보리 거두던 아버지 잠시
붉은 노을과 함께 기대서던 곳

돌담 숭숭 난 구멍처럼

-김광렬의 ‘제주돌담’ 모두

날줄 씨줄로 무수히 엮인 제주의 밭돌담을 모두 이으면 2만 2천여km나 된다고 한다.
가히 지구의 반 바퀴를 도는 거리이다. 이러한 제주를 중국 만리장성에 빗대
‘흑룡만리의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람이 늘상 터를 잡고 사는 제주에서, 돌담은 제주민들의 삶을 지켜 온 정신적 지주이자, 동반자였다.
시인은 어느 날 문득 돌담길을 걷다가 ‘씨 뿌리던 어머니가 있었고/ 보리 거두던 아버지 잠시/붉은 노을과 함께 기대서던 곳’ 으로서의 돌담의 존재를 새삼 깨닫고, 그 추억 그 아련함에 젖어오는
그를 무엇이라 이름 불러야 하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가끔씩 잊고 산다고 그리움이 아니랴. 그리운 것들은 다만 내 안으로 잠시 사라졌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일 따름이다. 그대, 그리움이 있거든 지금 만나러 가라. 오승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