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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귀환(歸還)
신진우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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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2.0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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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8일 미국 서부의 온타리오 국제공항에는 성조기에 쌓인 한 젊은이의 유해가 도착했다. 이틀 후 캘리포니아 리버 사이드 국립묘지에서 그의 장례식이 거행 되었다. 로버트 스틴슨, 1944년 9월1일, 동료와 함께 B-24기에 몸을 싣고 일본군 시설을 폭파하라는 명을 받고 태평양 상공으로 출격했던 그의 비행기는 이후 레이다 상에서 사라진다. 미국정부는 그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시도했지만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65년이란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한편 태평양전쟁 당시 실종됐던 미 공군기의 잔해와 병사들의 유해를 전문적으로 찾던 민간단체인 벤트 프롭(Bent prop)은 드디어 서태평양 팔라우 제도(필리핀과 파푸아 뉴우 기니가 ‘ㄱ’자 모양으로 마주치는 곳)에서 무려 65년 동안 차가운 바다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그의 유해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아직 생존해 있던 그의 형제들과의 D.N.A 검사가 끝나고 그는 마침내 로버트 스틴슨 공군 병장으로 판명되었다.
미국정부와 민간단체의 집요한 노력이 어우러져 이루어낸 쾌거라고 단정하기에 앞서 미국의 자국민에 대한 애족심(愛族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팩스 아메리카나’로 일컬어지는 ‘대 미국주의’가 가지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조국을 위해 산화한 자국 병사의 배려에 관한한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자국 병사나 경찰의 명예회복과 세심한 배려에 관한한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자국 병사의 주검은 백골이 진토가 되는 한이 있어도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기어이 찾아내고, 고국으로 데려오고, 그의 애국심을 전 국민에게 고취시켜주고, 국립묘지에 안장해준다.
그 병사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가족은 그를 자랑스럽게 가슴에 새긴다. 이것이 미국이 강한 이유이다. 이것이 미국시민과 공공건물이 전 세계 곳곳에서 테러의 타겟이 되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모두가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심지어 반미(反美)의 최전선에 서서 그 대가로 짭짤한 재미를 보는 반미 투사들조차도 뒤로는 미국 영주권을 따기 위해 혈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 시민권 아니 하다못해 영주권만 얻을 수 있다면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교시도 내던질 반미투사들 적지 않다. 한. 일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던 2002년 6월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우리 측 어선을 보호하던 해군과 북한해군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함포와 기관포가 불을 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후 아군은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하고, 참수리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는 해상전투가 발생했다. 영해를 수호하다 장렬히 산화한 여섯 주검은 영웅으로 칭송받기는 커녕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했다. 오히려 남.북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조소를 받았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자식을 잃는 참극을 당한 여섯 영웅의 가족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한 하사관의 부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얼마 전에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반대파에 의해 독재정부로 낙인찍힌 이 정권하에 와서야 한갓 서해교전(西海交戰)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고쳐 불리어 졌으며, 고인들에게 훈장이 수여 되었고, 추모식도 정부 기념행사로 승격되었다. 주관부서도 제2함대사령부에서 국가 보훈처로 옮겨졌다.
1989년 5월3일, 동의대 중앙도서관에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경찰관 포함 전경 7명이 사망하는 대 참극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학생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전투경찰 5명을 구하려는 경찰 측과 이를 제지하려는 시위주도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시위학생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가연성 물질에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발생했고, 걷잡을 수 없는 화염 속에서 7명의 국가공무원이 힘 한번 못써보고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2005년 민주화 공로로 인정받아 1인당 2,500만원에서 수억에 이르기까지 보상금을 받았다. 순직 경찰관 들은 변변한 추모비하나 없다가 사건 발생 후 20년 만에 부산 경찰청 동백광장에 ‘5.3 동의대사건’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35세의 나이로 졸지에 남편을 잃었던 고(故) 최동문 경위의 부인 신양자씨는 어느새 55세의 중.노년이 되었다. 그녀의 잃어버린 20년은 어디에서 보상 받을 것인가?
한 때 세계질서를 지배하던 영원한 제국 로마(Rome), 대체 그 조그만 도시 국가이던 로마가 어떻게 해서 세계를 지배 할 수 있었을까? 전성기의 로마는 서적이나 영화를 통해 익히 아는 바이지만, 성장기의 로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것은 로마 국민이라는 로마의식이 로마를 한데 묵었기 때문에 로마는 성장했다고 본다. 로마의 국민임을 의식하고, 그것을 특권과 의무로 여기고, 로마의 법질서 아래에서 그들의 권리를 확신하고, 로마의 이름으로 기꺼이 희생하려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 로마는 어떻게 해서 무너졌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로마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려는 로만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4.5 세기에 발생한 훈족과 게르만족의 침입은 본질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그보다 더한 위기도 극복한 로마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로마의 성장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로마의 멸망을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신진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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