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석

최근 에너지정책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의 확대를 위해 원자력과 석탄의 비중을 줄이고 그 자리를 신재생 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요지의 정책방향이 발 표됐다.

특히 원자력발전의 경우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와 더불어 정부에서는 이른바 ‘탈핵’을 선언하면서 이후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당면한 문제로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의 일시중단 및 향후 영구중단 여부를 판가름할 공론조사에 대한 논란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다양한 사실에 근거한 충분한 논의 및 정책수립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면과제로서신고리5, 6호기에 대해 ‘Go’ 또는 ‘Stop’을 결정한다는 정책결정 주제 선정에 대한 합리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를 논외로 하더라도 발전소 건설을 위해 에너지 수급 전망과 환경영향평가 등 기존의 다양한 검토가 이뤄져서 일이 추진되고 있었을 텐데, 공론조사라는 다소 낯설고 새로운 형태의 의견수렴 기구가 마련된 것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첨예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방법을 제시하려는 예로서, 프로야구의 합의판정 제도가 있다.스포츠의 특성상 오심도 경기의 일부로 인정하고 대부분의 종목에서는 심판의 권위에 따라 판단이 이뤄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포츠의 프로화에 따라 경기능력이 향상돼 그야말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애매한 경우가 자주 발생함과 동시에 영상 중계기술이 발달해, 흔히 ‘비 디오 판독’이라는 새로운 판정 방식이 도입됐다.

우리나라 프로야구협회인 KBO에서는 경우 방송사의 느린 재생 영상을 활용한 합의판정제도를 4년 전부터 경기에 활용하고 있으며, 올해 시즌에서는 방송사의 중계화면 뿐 아니라 자체 영상을 활용한 보다 전문적인 판단을 위해 ‘KBO 비디오 판독 센터’를 구축하여 활용하고 있다.

사실, 합의판정에 대한 요구는 국내외국에 서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야구에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험을 참조해 우리식의 합의판정제도가 마련되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최근어느 선수의 홈런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2루타로 잘못 결정돼 경기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가있다. 비슷한 상황이 이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판정관의 오독으로 어느 팀은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아쉽게 놓쳐버렸다.

프로야구에서 논란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합의판정 혹은 비디오 판독 은 많은 야구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의 배경에는 보다 많은 장비를 활용하여 더욱 다양하고 정확한 영상을 얻으려는 KBO의 노력이 있다. 사실 앞 선 예에서 보듯이 합의판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객관적 사실인 비디오의 오류가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실수 혹은 규정에 대한 충분한 숙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에너지정책으로 돌아와 보자.

매우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에 견주어 보았을 때, 비교적 간단한 판정을 내리는 프로야구에서 조차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수년간의 노력이 있었고 제도가 시행중인 현재에도 보다 나은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독일이나 스위스의 경우 각각 25년, 33년 이라는 공론화 기간을 거쳤다. 그런데 우리의 공론조사는 불과 3개월이다. 3년 도 아닌 3개월 말이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판단을 내리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과연 ‘숙의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충분한 논의는 이뤄질 수 있을지,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데이터의 제공이 가능이나 할지,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합의판정은 파급력에 있어서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합리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사실 확인의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