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길 시인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허덕인다'는 속담이 있다. 한낮이 너무 뜨겁다 보니 밤에 달만 봐도 놀란다는 말이다.

요새 말 그대로 가마솥 같은 폭염이 세상을 찜질하고 있다.

7월 달은 폭염의 나날이었다.

심지어 24일에는 구좌읍 김녕의 낮 기온이 38.6℃를 기록했다. 제주에서 이런 낮 기온을 보인 건 아마 최초일 게다.

요샌 더위가 심각한 경우 스마트폰 문자로 폭염특보를 알려준다. 7월 달 내내 폭염특보 문자로 스마트폰이 징징댔다. 폭염특보 가운데 폭염주의보는 낮 최고 기온이 33℃ 이상, 폭염경보는 35℃ 이상 이틀 넘게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문자 온 걸 한번 세어보았더니, 폭염주의보 및 경보로 7월 달만 총 8번이었다. 제주지방의 폭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올 여름 제주에는 유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60년 이래 7월 중 일평균기온이 30℃를 넘긴 날이 5일 이상인 해는 올해와 2013년(6일) 뿐이다. 올해 제주의 7월 평균기온도 평년값(25.8℃)보다 3℃ 이상 올라 1923년 기상 관측 이래 처음으로 29℃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같은 폭염이 언제 수그러들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보통 이런 폭염은 6월에서 8월 사이 집중됐었는데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한반도에도 폭염이 조금 일찍 발생했다가 가을까지 지속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세계 최초로 ‘폭염연구센터’를 개소했다.

낮에 그렇게 쨍쨍 뜨거우면 밤에는 좀 식어야 잠도 좀 자려만 요샌 밤이 돼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열대야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고들 있다.

보통 밤 최저기온이 25℃이상인 경우를 열대야(熱帶夜)라 한다.

밤에 높은 습도가 복사냉각효과를 감소시켜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고온다습한 무더위가 밤 시간에도 그대로 남는 것이다. 열대야가 발생하면 습윤한 열대 지역의 밤 기온과 비슷하다. 너무 더워서 사람이 잠들기 어렵고 고통스럽다.

최근에는 초열대야(超熱帶夜) 현상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 초열대야 현상은 밤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인 것을 말한다.

지난해 여름철 열대야 발생일수는 제주 43일, 서귀포 35일, 고산 35일, 성산 33일로, 제주와 서귀포의 경우 전국 1, 2위를 기록했다.

더위로 잠을 자지 못하거나 자더라도 얕은 잠을 자기에 온 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 하지만 덥다고 선풍기나 에어컨을 가동하고 잠을 들 수도 없다. 노약자나 장기질환자(심혈관질환자, 호흡기질환자 등)들에게는 호흡기 질환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뜰에서 목물한 후 앞마당에 모깃불을 놓고 평상에 걸어 앉아 부채질도 한가로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반(半) 밤은 벌써 훌쩍 간다”

이는 염상섭의 ‘여름밤 양미만곡(凉味萬斛)’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목물, 등물, 등멱이라는 말로도 쓰이는 등목이란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허리 위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어 주는 것으로 주로 남정네들이 등물을 하는데 이때 등목을 해주는 사람은 어머니거나 누이 또는 아내와 같은 여성들이 맡았다.
 

지금처럼 샤워시설이 잘돼 있는 시대에는 구태여 허리 위만 시원하게 해주는 등목을 할 까닭이 없지만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더우면 등목하고 나서 고무다라에 띄었던 시원한 수박 한쪽 먹으면 여름 더위가 저만치 사라지곤 했다.

요새 문득 드는 생각은 예전의 여름나기는 시원함을 찾으려 했다기보다는 한 해를 지나는 와중에 쉬어갈 여유를 갖는데 있지 않나 한다.

이 폭염도 또 지나갈 것이고 세월은 또 유수처럼 흐를 터이니, 우리 모두 좀 더 차분히 오늘을 보내는 것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