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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꽃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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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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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정체는 소매치기 였어
말 한마디 없이
나와 너의 순정만 훔쳐 달아 났지
나 잠깐 혼절해 있는 사이
그걸 어디 멀리 내다버리러 간 줄 알았는데
이순 어느 맑은 날
처음 수줍음 그대로 돌아 와 있네

-최영철의 ‘나리꽃 필 때’ 모두

 

첫사랑, 첫날밤, 첫눈, 첫 출근, 첫 키스, 첫차…
세상의 ‘첫’으로 시작되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고 소중한 것으로 각인돼 왔다.
그러나 이 시는 기막힌 반전이다.
그 ‘첫’이 우리의 순정이나 설렘, 희망을 훔쳐 달아난 소매치기인 것이다.
이렇게 순정이나 설렘, 희망을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재미가 없었을 것인가. 아득히 먼 곳으로 가서 장물을 처분한 줄 알았는데,
이순의 길섶에서 나리꽃 피니 알겠다. 내가 잃어 버렸던 ‘첫’들이 거기 만개해 있다는 걸. 주근깨 박고 내 옆에 수줍음으로 와 있었다는 걸.  오승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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