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기철 시인

서울 정독도서관 잡지 코너에는 연변의 문예지를 포함한 잡지들이 진열돼 있는데, 디자인, 활자, 지질들이 좀 떨어진다. 작품들은 서구의 세례를 덜 받아 우리 고유의 정서와 표현이 두드러진다.

8월 초 제주펜과 연변시인협회와의 교류로 처음 연변에 가게 됐다. 연변조선인자치주의 수도인 연길에 내렸는데, 조선인자치주라서 거리의 간판에 한글을 먼저 쓰고 뒤에 한자를 썼다. 고층 건물도 즐비하다.

다음날은 남 다 가 봤다는 백두산으로 향했다. 우리 버스는 중간에 멈춰 작은 차로 갈아타 한참 올라가 또 멈췄다. 중간 기착지인 거기 주말이어서 더 그런지 사람들로 빽빽하다. 천 명이 훨씬 더 됨직하다. 거의가 중국인으로 백두산의 인기가 실감났다. 관광지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많은 인파를 못 봤다. 다음 단계로 이동하라는 공안(公安)의 신호가 나면 마치 멸치 떼들처럼 달려간다.

한참 걸려 일행 몇이 작은 차를 탔다. 145번. 백 여 대의 소형 버스가 계속 천지 바로 아래까지 갔다 왔다 한다. 해발 2300m를 지나니 안개가 몰려온다. 나무는 없고 구부러진 길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작은 차들의 모습이 마치 장난감 같다. 천지(天池) 바로 아래 제주의 윗세오름 휴게소 같은 데서 차가 멈추고, 계단으로 한 10분 쯤 올라가니 정상. 안개가 여전하고 천지 물은 안 보인다. 여기 날씨는 변화무쌍해 천지 보기가 어렵다. 일정으로 오래 못 있고 내려간다. 여길 와 봤으니 됐다. 천지는 마음으로.

다음 날은 해란강이 보이는 일송정(一松亭)으로 갔다. 해발 300m 쯤 되는 오름 같은 델 올라가 거기 소나무 곁에서 등 뒤 해란강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는다. ‘선구자’는 원래 ‘용정(龍井)의 노래’였다고 한다. 가사도 좀 바뀌었다. 용정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해란강을 바라보며 노래의 힘이 크구나 했다.

다음 윤동주 생가로 갔다. 용정시에서 버스로 한 30분 쯤 간 풍광 좋은 들녘에 있는 마을. 19세기 말 청나라의 정책 변화로 조선의 이민이 대거 두만강 이북으로 유입 됐다. 윤동주네 가문은 1886년 함경도에서 자동이란 데로 들어왔다가 1900년 여기 명동에 땅을 사서 왔다고 한다. 부유한 편이었고 모두 18명으로 아버지 윤영석이 명동 처녀와 결혼해 1917년 윤동주를 낳았다. 윤동주는 여기서 명동소학교를 나왔고, 28년 생애의 절반인 14년을 여기서 살았다. 그의 좋은 시들은 여기를 모티프로 한 것들이 많다.

확장한 듯한 생가 뜰에는 정제 되지 않은 시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대부분 1936~7년에 쓴 시들이니까 그가 1938년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가기 전 여기 용정서 5년제 중학교를 다닐 때 것들이다. 연희전문 재학 시에 쓴 ‘자화상’ ‘또 다른 고향’ ‘새로운 길’ ‘별 헤는 밤’ ‘참회록’ 등 그의 잘 알려진 시들이 없어 좀 생소했다.

저녁에 연길시의 한 회관에서 ‘섬과 대륙을 잇는 문학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문학 교류 행사를 가졌다. 연변시인협회 김응준(84) 회장을 비롯 20명 가까이 나왔다. 양쪽이 번갈아 시를 낭송했는데, 그쪽은 목소리 톤이 높고 우렁찼다. 문예평론가 최삼룡(79) 선생이 힘찬 목소리로 “문학과 술과 여자가 있으면 지옥도 천당이다!”라고 건배사를 했다. 거의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출신들이다. 1930년대에서 60년대 생들이니까 윤동주의 후배들이고 이주 몇 대들이다. 시의 표현들은 좀 투박했지만. 

‘두만강을 건너온/뻐꾸기 한 마리 잡아놓고/뾰족한 칼로/배를 째기네//가슴팍이며 갈비뼈며/두루두루 헤치며/어느 나라 국적인가 찾아보지만/신분증 같은 거 없네//…//토끼가 간을 빼서/산 속에 숨겨두고 다닌다더니/요놈도 신분증이랑 려권이랑/어느 산속 바위틈에 감춰두고 다니는 걸까?/종종/앞산에 가 찾아보네/탈탈/뒷산에 올라 뒤져보네//뻐꾹-뻐꾹-/밸이 다 빠진 뻐꾸기 다시 살아나/훨-훨-/강을 건너 날아가네’(전병칠, ‘낮꿈’)

10여 년 전 남북작가회의 때 북한에 가려다 못 갔으나, 연변(북간도)에 가고, 윤동주의 흔적과 그 후배들도 만나고 나니 내 정신의 장소가 훨씬 넓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