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석 교수

지난주에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다녀왔다. 내가 연구하는 ‘플라즈마 응용’ 분야에서는 제법 권위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학회여서, 연구를 통해 알게된 세계 곳곳의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친분이 있는 외국 교수들과 함께 연구 뿐 아니라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온 한 교수와는 현재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 및 일본의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2011년 3월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동일본대지진이 있었고, 그에 따른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비상전력 공급장치가 침수돼 며칠 후 격납건물의 파손으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사고 이전에 대지진으로 인해 이미 대부분의 원자로는 안전하게 정지됐지만, 이후 지속된 여진들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불안감이 겹쳐지면서 일본 전역의 원자력 발전소는 가동이 중단됐다. 그런데 2014년 9월 규슈전력의 센다이 원전 1, 2호기를 시작으로 현재는 총 5기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다. 일본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체르노빌 원전이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발전량 기준으로 현재 세계 10위의 원자력 발전국이며, 스리마일 섬 원전에서 노심용융 사고가 있었던 미국도 거의 30여년 만에 신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왜 원전 사고가 일어난 나라에서 조차 ‘탈핵’이 아닌 원전을 재가동 하고 유지해 나가려고 할까?

내가 만난 일본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은 섬이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산업을 일으켜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에너지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우리나라는 한반도로서 아시아 대륙에 연결돼 있지만 남북이 갈라져 북한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에너지원의 관점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섬과 같다고 했다. 설령 남북이 통일된다 하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이 전통적 우방국이 아니기 때문의 안정된 에너지의 확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좁은 국토면적으로 인해 인구가 제한돼 내수만으로는 발전의 한계가 명확하기에, 국가의 성장전략으로 산업발전을 이루기 위한 경제적이고 독립적인 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의 필요성은 매우 명확하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기업체에 대해 전력 수요 감축을 요구하는 이른바 급전지시를 두고 여러 논란이 많다. 급전지시의 배경에 대해 여러 말이 많지만, 어쨌든 급전지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결국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서 강제적으로 전력수요를 제한한 것이다. 국민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국부를 증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국방을 포한함 사회 여러 요소들을 충분히 준비해두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전력의 관점에서도 산업과 가정에 필요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더욱이, 미래를 보더라도 에너지 소비의 확대는 명확하다. 일부러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가로막지 않는 한 전력수요의 팽창은 막을 수가 없다. 사회적 이슈인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해 보자. 미래의 산업은 단순한 생산이 아닌 방대한 데이터의 확보와 분석을 통해 최적화된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 노트북이나 PC수준의 컴퓨터로 가능할까? 작년 인간과의 바둑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알파고의 경우 수백 개의 중앙처리장치와 영상처리장치, 그리고 무려 920 테라바이트의 기억장치를 사용하는데, 사용하는 전력은 무려 12기가와트다. 대결을 벌였던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데 필요한 전력이 20와트임을 감안하면 무려 6억 배나 차이가 난다. 물론 하드웨어 기술의 발달과 연산 알고리즘 개선으로 알파고의 경우 전력 사용량을 최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고, 인류 문명의 발달에 따라 컴퓨터에 의지해야 할 데이터의 양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도록, 아니 최소한 현재 수준의 생활을 유지라도 해 나가려면 어떠한 에너지 정책이 펼쳐져야 하는가? 편견과 과도한 공포가 아닌 사실과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을 세워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