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렬 시인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집 곳간은 / 늘 풍족했다 / 예측 가능한 고정적인 수입이 / 현세만 아니라 내세에도 지속되기를 / 바랐다 반대로, /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집 곳간은 / 변화무쌍했다 / 배부를 때도 있다면 / 배곯을 때도 많았다 / 그래서 세상은 악마가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 양자의 한 가운데 서있는 / 사람들도 있다 / 현세의 고통을 내세에서 보상받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 / 환경이 사상을 만들고 / 그 때문에 인류는 싸우고 화해하고 / 또 싸운다 / 이미 찢길 대로 찢긴 몸에 / 해군 구상권 폭탄까지 맞고 신음하는 / 강정의 내세는 어떤 곳일까 

작년 어느 무렵쯤 쓴 「강정의 내세」라는 내 졸시 전문이다. 뒷부분의 3행을 뺀 앞부분은 ‘강정의 현실’을 말하기 위한 전제에 해당한다. 전제 부분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경제적·현실적 여건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과, 내세에서는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 어떤 경우든 인류의 삶은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다. 가지면 가진 대로 가지지 못하면 가지지 못한 대로 그늘진 욕망 때문에 인류는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운다. 물론 사상과 감정이 살아있는 곳에 싸움이 없을 수 없다. 허나 그것이 어떤 싸움이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꼬인 매듭을 풀어나가느냐가 또한 의미 있는 것 같다.

‘해군은 2007년 6월 강정마을을 건설부지로 확정하고 2010년 1월 본격 공사에 들어가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를 준공했다’는 8월 13일자 제주신문 1면, ‘강정마을 구상권 합의점 찾나’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6여 년의 기간을 통해 공사를 완결했다. 이 과정에서 해군은 국책사업인 제주해군기지 공사 방해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실금 중 일부를 시위 가담자와 참여단체가 책임져야 한다며 지난해 34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참, 아연할 수밖에 없다. 일부 강정마을 주민들의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행위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지질학적 측면에서나, 미적 측면 또는 정서적 측면에서나 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고향 앞바다를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령 오랜 객지 생활로 심신이 찌든 사람의 경우를 보자. 그에게 있어서도 고향은 현실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정신적 버팀목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하물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디 자기 고향을 상실하고 싶을까? 고향을 잃어버린 자의 슬픔은 나라를 잃은 자의 비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어난 땅에 발 디디고 있다 해서 다 고향이요 나라라고 말할 수 없다. 타자의 강압에 의해서 상실된 고향이나 나라는 빼앗긴 질곡의 공간일 뿐이다. 그런 그들의 정서를 십분 이해하고 보듬어 안으려는 곡진한 마음이 있었다면 결코 그들의 구속은 물론, 구상권 폭탄까지 안기는 등의 불편한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와 배려는 실종되고 무소불위의 힘만이 존재했던 게 지난 정부였던가.

그런 가운데 이번 정부가 나서서 해군 구상권 문제 등을 선뜻 해결할 의사를 내비쳤다. 막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지킨다는 식의 역설적인 힘의 논리를 전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명분으로 어떤 일을 강제하는 행위도 결코 옳지 않다.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더라도 주민 설득을 통한 목적 달성이 그래도 보다 슬기로운 방법은 아닐까. 어쨌든 이 기회에 해군 구상권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찢긴 민심을 기우는 일에도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강정의 저 내세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현세(現世)에서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