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옛날로 치면 임금이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 하여 그 위에 사람이 없고 백성 모두가 그 발아래 엎드려야 하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런 탓일까?

516 군사혁명에 의해 세워진 독재 정권에서부터 이어진 5공화국까지는 군인 출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으니 몸에 밴 지휘관의 습관이며 성격이 무소불위의 권위의식을 버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어진 민주투사 출신의 대통령들도 결국은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다.

민주화 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온 두 김 씨 성의 대통령은 아집과 독선을 끝내 버리지 못하였다.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역사의 한 자락에서 보면 이들의 임기 5년은 촌음처럼 짧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임기 중에 뭔가 치적을 반드시 쌓고 말겠다는 명예욕에 불타는 모습들이었다. 결국은 일을 저지르고 별여 놓으면 다른 대통령은 또 다른 일을 구상하고 밀어붙였고 그 고통과 감내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OECD의 회원국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며 샴페인을 터트리기에 바쁘다 보니 IMF가 그 결과였다. 인권과 평화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지만 그 뒤에는 수억 달러의 대북 비밀송금이 있었다.

노 씨 성의 대통령 역시 행정수도를 옮기겠다며 독불장군의 행보를 걷다가 탄핵이라는 폭풍을 거치면서도 아집과 독선을 끝내 버리지 못하더니 이제 그 임기를 마치고 있다. 이제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 당선자가 되어 곧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노 씨와 이 씨의 감정싸움에 기 싸움까지 보탠 모습은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써왔던 대통령 당선자의 호칭을 부득불 당선인으로 불러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언가 차별화 하려는 잠재의식의 발로인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놈자(者)라는 글자가 불경스럽기에 사람인(人)자를 써야 한다는 발상이 아마도 그 단초인 듯싶지만 이 요란한 시작은 또 어떤 결말로 마무리 되어질 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다.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들을 심판하지 못한 유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의 소홀이다.

어떤 이는 아들의 병역문제만으로도 두 번이나 대통령이 되는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는데 위장전입과 위장취업이라는 그보다 더한 일을 갖고서도 끄떡없을 수 있었으니 그런 국민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은 5년 뒤 과연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차피 성군(聖君)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지금 세상인지도 모른다. 경제가 살아난다고 삶의 질이 윤택해지는 것도 아니다. 온갖 불신과 대립이 지금 세상의 정서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지도자는 진정 자신을 속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가장 훌륭한 대통령은 잃어버린 도덕을 다시 세우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5년의 세월동안 나는 무엇을 이룩했노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맛나는 세상의 초석을 다졌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훗날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되어지지 않을까.

인품과 자질이 뛰어나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자만과 오만이 아니라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그 선거판의 약속을 선택한 것임을 끝까지 잊지 않는 그런 대통령을 우리는 원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