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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갤러리의 나무들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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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2  1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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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기철 시인
제주현대미술관은 제주시나 서귀포시에서도 꽤 먼 곳이다. 예전에 제주 섬에서 제일 오지로 쳤던 저지리에 있다. 그 깊은 곳에도 가을은 찾아들어 나뭇잎들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다. 그 부근 김창렬미술관이나 노리갤러리 뜰의 이파리들도 초록을 건너서 좀 유유자적해지기 시작했다. 이즈음 노리갤러리에서는 오석훈 기획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팜프렛에 화가 강요배가 쓴 글의 제목 ‘초로(初老)의 노래’도 그에 걸맞다.
저지리라지만 노리갤러리는 월림리에 있다. 저리리는 한경면이고 월림리는 한림읍이다. 넓게 제주현대미술관은 본 건물과 개인 작업 공간들, 김창렬미술관, 노리갤러리 등을 포함하겠지만, 노리갤러리는 한경면의 경계 바로 너머에 있다. 허나 여기 나무들은 현대미술관에 수렴돼 저지리의 색깔을 띠고 있다.

지난달 말 노리갤러리 오석훈 기획초대전 개막에 갔었다. 여름 내내 벽화재(碧花齋)에 틀어박혀 준비에 땀을 많이 흘렸겠다. 직장을 마감하고 선흘리 깊숙한 곳에 화실을 지어 혼자 지내며 그림보다 동양 고전에 심취하더니, 그 세계와 정신이 화폭에 짙게 묻어난다. 20대에 개인전을 연 후 40년 만에 여는 전시에 기대감과 격려의 마음으로 개막 때 참석한 이들이 꽤 많았다. 1977년 함께 ‘관점’을 시작한 강요배, 고영석을 비롯해, 현기영, 김정기, 고원종, 김순관, 강부언, 문무병, 김석희, 김희숙, 박흥일, 현행복, 윤용택 등.

우리가 하는 ‘예담길’이라는 모임은 매월 첫 토요일 열 시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버스로 전 달에 갔던 데를 이어 걷는데, 이 달엔 만나서 행선지를 노리갤러리로 정했다. ‘예담길’은 ‘예술을 이야기하며 길을 찾는다’는 뜻. 거기로 가는 직행이 없어 우선 안덕면 동광리까지 가서 걸어가기로 했다. 동광에서 내려 걸어가다 저지리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걸어가니 모두 한 시간은 걸었다. 얼마 걷진 않아도 먼 여정에서 돌아오는 이들처럼 노리갤러리에 들어서자 오 작가가 함뿍 맞아준다. 가고 싶어도 이 섬 깊숙한 데 있어서 발길이 선뜻 떨어지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오늘 ‘예담길’은 김병택, 장일홍, 문무병, 김석희, 나기철, 김광렬, 양원홍 여섯이다. 다들 일이십대부터 오십 년 내외를 함께 해 온 글 동네 선후배들이다. 오늘은 여성 둘을 포함해 셋이 빠졌다. 오 작가와는 다들 가깝다. 들으니 그는 예전에 소설도 쓰고 싶어 했다는데, 그래서인지 80년대 초 황석영 작가도 그 집에 머무는 등 글쟁이들과도 친하다. 한동안 한시 짓기에도 몰두했다. 손으로 하는 일을 비롯해 여러가지에 능한 그이지만 나는 아직 그가 부르는 노래는 듣지 못했다. 이삼십 년 전 노래주점도 한참 다닐 때, 그는 꽤 긴 시간을 노래 한 자락 안하고 같이 있곤 했다. 그런 그가 이제 ‘초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늘 김석희 형이, 노형동에 있는 이름이 바꿔진 예전 롯데시네마 극장에 가니 입장료의 반액만 받더라며 나이를 실감했다 한다. 지난 한 달 방에서의 타박상 등을 겪은 장일홍 형은 친구 문무병에게 앞으로 언제 어찌 될지 모르니 공동 저자로 성장소설을 쓰자고 제안한다. 머리숱이 적어 김병택, 문무병, 김광렬은 헌팅캡을 썼다. 공개 구혼장을 냈던 장일홍 형이 연전에 새 짝을 만났으나, 문무병 형의 방은 지금도 썰렁하다.

어느 새 시간이 이렇게 훌쩍 갔을까. 노리갤러리의 나무들은 ‘초록이 치쳐’ 물들어가고, 오석훈은 ‘초로의 노래’를 부르고, ‘예담길’은 무어라도 해 보자며 꿈틀댄다. 11월에 김병택 시집 ‘꿈의 내력’, 장일홍 소설집 ‘山有花’, 김석희 번역 ‘월든’으로 북 콘서트를 갖기로 했다.

노리갤러리 뜰의 나무들이 부르는 초로의 노래를 들으며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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