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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가을 그리고 억새
김용길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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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2  13: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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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길 시인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에 이르렀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서늘함을 품어 대지 위를 날아다닌다. 그리고 곳곳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의 가을도 단풍을 즐기기 위한 이들로 가득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제주 한라산이다. 한라산 단풍은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절정에 이르러 11월 중순까지 한라산의 진풍경을 느낄 수 있다. 한라산 단풍을 감상하기 좋은 곳 중 하나는 바로 관음사 등반코스다. 특히, 관음사 코스 중 삼각봉 주변, 탐라계곡의 오색단풍, 형형색색의 단풍을 배경으로 용진각 현수교의 아름다운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컬러풀한 단풍의 매력이 모두의 시선을 붙잡겠지만, 제주의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억새의 계절이다. 섬 전체가 억새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을이면 제주도 어딜 가나 억새를 만날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길 따라 억새가 만발했다.

바람결에 이리저리 파도쳐대는 억새 군락이 마치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 일부러 키운 것도 아닐 텐데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빛 벼같이 억새가 아주 풍년을 이뤘다. 깊어가는 가을 들녘엔 초록빛 움튼 밭과 새하얀 풍력발전기가 은빛 억새 군락과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어댄다.

억새는 전국 산야의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서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대형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기둥모양이고 곧게 서며 키가 1~2m 정도 된다. 굵고 짧은 땅속줄기가 있으며, 여기에서 줄기가 빽빽이 뭉쳐난다. 꽃은 9월에 줄기의 끝에서 부채모양으로 달린다.(산방꽃차례) 꽃에는 가늘고 끝이 뾰쪽한 작은 이삭들이 밀집해 달리고 낱꽃의 밑에는 황백색의 털이 있다.사실 국내에 자라는 일반 억새들은 가을에 옅은 갈색으로 변하는 게 특징이지만, 분홍색 억새도 있다. 핑크뮬리(분홍억새)라 하는데, 이름처럼 갈색이 아닌 분홍색으로 변한다. 핑크뮬리의 원산지는 미국 동남부인데, 다양한 즐거움과 볼거리 제공을 위해 국내에 수입한 것이다. 제주에서도 협재해수욕장 근처, 산방산 인근, 서귀포시 중산간 지역 카멜리아힐, 노리매공원 등에 핑크뮬리가 많다.억새를 갈대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꽃의 색깔이 흰색에 가까우면 억새, 키가 큰 편이고 꽃의 색깔이 갈색에 가까우면 갈대로 구분한다. 또한 자라는 터도 다르다. 억새풀은 산이나 들 마른 토양에서 자라지만, 갈대는 강가나 호수가 늪지대에서 자란다. 억새랑 비슷한 게 갈대 말고 달뿌리풀이 있다. 이 셋을 구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긴 팔로 춤을 추며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에 도달하게 됐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갈대와 달뿌리풀은 서있기가 힘들었지만 잎이 뿌리 쪽에 나있는 억새는 견딜 만 했다. 억새는 산마루에 정착하고 갈대와 달뿌리풀은 억새와 헤어져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들은 내려가다가 개울을 만났다. 마침 둥실 떠오른 달이 물에 비치는 모습에 반한 달뿌리풀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니 둘이 살기엔 너무 좁았다. 그래서 달뿌리풀과 작별하고 더 아래쪽으로 걸어갔는데 앞이 그만 바다로 막혀버렸다. 갈대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됐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지나간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가수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의 첫 소절이다. 여기서 으악새가 경기방언으로 억새라고 한다. 가을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억새 잎은 쏵쏵하는 소리로 그들만의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바람에 몸을 내맡긴 억새는 해질 무렵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간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의 자화상 같다.

이 가을 한가운데서 억새가 가득찬 화폭으로 걸어가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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