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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서관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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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2  12: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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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기철 시인
‘장 모 시인 룸펜 때 서울시교육청 산하 정독도서관 다니며 5년 간 책 잘 읽었다 한다 중 3부터 수십 년 나 제주도교육청 산하 제주도서관 슬렁슬렁 다니고 있다/오늘 서울시교육청 산하 남산도서관 쯤 나 늦은 룸펜으로 살랑살랑 와 있다’(졸시, ‘살랑살랑’)

가을이 깊어 제주도서관 주위 나무 이파리들도 색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뒤의 공원이 도서관과 연결돼 독서의 피로를 풀거나 글쓰기의 구상에도 좋다. 공원과 도서관 사이 건천이 있고 낮고 널찍한 다리를 건너면 공원이다. 나는 자주 거길 가서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온다. 다리 건너기 전 도서관 뒤 나무들이 즐비한 길은 길지 않아도 참 고즈넉하고 얼마 전 벽에 시들도 붙여놓아 한결 운치를 준다.

지난 번 공사로 도서관이 몇 달 문을 닫았을 때, 도심의 정신적 공간이 사라진 허탈감을 느꼈다. 이 도서관은 이십 년 전 여기로 옮겨오기 전 제주시 남문로에 있던 제주도립도서관이었다. 지금은 제주에 공공도서관이 많이 생겨 여기보다 시설이 좋은 곳이 여럿 있지만, 여긴 제주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그래 여기 도서관의 책들에는 내 소년과 청년기의 손때도 좀 묻어 있으리라.

얼마 전 여기 60주년 기념행사가 조촐히 있었다. 나도 여기 50주년을 스스로 기념했다. 세미나는 여기 보관된 50년대 ‘제주신보’도 얘기했다. 그 때 2면이었는데 지금은 여기 여러 개 신문들이 16면을 발행하고 있으니. 제주에 일간지가 하나밖에 없던 1960년대는 나의 중고 시절이었고, 북신로에 있던 단층의 제주신문사에는 문인 기자들이 많아서 문예란이 빛났다. ‘3월학생문예’라는 걸 만들어서 전도 초중고생들의 작품을 모집하기도 했다. 갓 나온 신문을 보려 신문사 앞 게시판에 자주 갔다. 1968년 제1회 고등부 시 당선작인 제주여고 3년 오추자의 ‘三題삼제’는 압축된 서정으로 아득했다.

‘1.窓창/ 달빛 아래/淸雅청아한 音響음향으로 풀리는/綠色녹색 커튼의 흔들림./아슴한 먼 옛날/밤마다 가슴에 그리던/꿈, 꿈. 2.장미/太陽태양이 몸소 심어놓은/현란한 光彩광채에 진저리치며/가시로 벗어놓은 因緣인연이 서러워/높은 悲鳴비명에 미친 듯이/피에 물들었구나./하늘에서부터/땅으로부터/솟아나는/斷絶단절된 生생의 歡喜환희였구나./3.裸木나목/어두운 江강물에서 떠오르듯/하늘 가까이 달려온/핏빛 情熱정열이/純白순백으로 內燃내연하는/헐벗은 時間시간./숨결 고운 목숨은/原始원시의 개울을 흐르고/조용한 渴望갈망의 시선 위/노을이 진다./가라앉은 날개짓하며/저마다 안으로 눈뜨는 시절.’

제주도서관 2층 한켠에는 이 도서관을 기증한 청암 박종실의 두상이 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 1957년 도내 처음으로 도서관을 지어 제주도에 기증했다. 그 상량문. ‘…휘장을 걷고 한라산을 마주보니 수려한 필봉(筆鋒)이 펼쳐지고 바다를 바라보니 넓고 넓은 문란(文蘭)이 활짝 열렸도다. 상자에 가득한 좋은 책은 요순삼대의 다스린 공적이요 서가에 가득한 모든 책은 주공십철(周孔十哲)이 남긴 행적이라 이를 숭상하는 자 그의 인의(仁義)를 삼갈 것이로다… 이곳 동쪽 백리에는 성산일출봉이 있는데 새벽에 잠을 깨어 물을 뿌리고 방을 닦아 청소년들에게 글을 익히고 가르치게 될 것이오... 아래에는 동서남북으로 학교가 연이어 있어 어려서는 공부하러 드나들고 자라서는 나라 위해 일해야 하니 공부에 힘써야 할 것이로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 후에 백가(百家)의 저술을 고루 갖추어 도서관 가득히 옛글과 현대글을 가지게 되면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를 읽고 즐길 것이니 이는 문물의 진보를 닦을 뿐 아니라…’

육십 년이 지나 여기는 수십 만 권의 책이 빼곡하고, 정신의 허기를 채우려는 이들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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