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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보내며
김용길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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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3  14: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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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길 시인
11월, 젓가락(箸) 같은 달이었다.

달력의 아라비아 숫자가 젓가락 세워놓은 형상이다.

어느 외국기자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 친구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진수성찬의 식탁을 보고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한다. ‘왜 한국은 이리도 야단스럽게 복잡한 식사를 하는가?’ 하고 의아해 했고, 특히 식탁에 놓인 젓가락을 보며 그 용도를 물었다.

마침 동석한 자리에 친구의 열 살배기 아들이 젓가락을 들고 널려있는 반찬 중 콩자반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으며 방글거렸다. 신기한 아이의 젓가락 놀림을 보고 외국기자는 그 아이에게 혹시 마술 공부 같은 거 하냐고 놀라워했다 한다. 나무젓가락도 아닌 가늘고 긴 쇠 젓가락이었는데, 외국기자는 아무리 흉내를 내어본들 콩자반을 집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젓가락은 아마 가장 일반적인 이기(利器)일 것이다.

젓가락을 나란히 뉘이면 다리(橋) 형상이다. 건너가고 건너오는 두 개의 발목이다. 11월은 10월에서 12월로 넘어가는, 가는 가을과 오는 겨울의 교량(橋梁) 역할을 하는 전환의 달, 계절의 접목기다. 절기상으로 이미 겨울의 초입을 넘어 소설(小雪, 양력 11월 22일)이 지났지만, 음력으로는 9월과 10월이 겹쳐지는 달이기도 하다.

이제 젓가락 같은 11월의 달력 장을 떼어낸다.

여기저기 방과 마루마다 벽에 걸어놓은 달력장에서 11월을 떼어내며 “하!”하고 한탄의 한숨 소리가 나온다. 마지막 달력 한 장, 12월만 남았기 때문이다.

벌써 일 년의 끝자락에 왔구나. 정유년의 한 해의 31일을 남겨놓은 그믐 해의 끝 달 12월만 남아있구나. 한숨의 바람에 12월 달력장이 펄럭거린다.

세월의 무게는 왜 이렇게 가볍고 싱거운지, 회환 아쉬움 등으로 마음이 이유도 모르게 조급해지기만 한다.
돌아보면 정유년 올해는 너무나 다사다난했다. 술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 괜히 죄도 없는 달력장을 손으로 툭툭 두드려 본다.

이럴 때 흔한 클리셰(cliche)가 “세월은 유수(流水)같다”인데, 세월이 빠르다는 의미와 더불어 흘러간 물을 어디 가서 찾고 잡을 수나 있을까 하는 슬픔이 담겨 있는 것같다. 광음여류(光陰如流) 광음사서수(光陰似逝水)이라는 말도 있다. 낮과 밤(光陰), 즉 시간과 세월은 물의 흐름과 같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본디 흔히 듣거나 쓰던 말들이건만, 요새 그 말들을 떠올리는 것이 쌀쌀해진 날씨보다 더욱 몸을 얼어붙게 한다.

어느 저녁 문학모임에서 몇 순배 술잔을 돌리고 젊은 친구들이 따라가자는 데로 노래방에 가보았다. 주책없이 따라왔나 싶었지만, 선배 예우한답시고 한 곡조 하라기에 마이크를 잡았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 있나요”

불러놓고는 내 노랫소리에 스스로 청승맞아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 우러러 보며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저 하늘이 알고, 저 별들이 알고, 허공을 휩쓰는 밤바람 같은 것이리라.

12월
삼백예순닷새날의 끝날
세월의 무게가 왜 이리 가벼운가
바람막이 창가에
덜렁거리는 12월의 달력 한 장
동그라미 숫자가
끝막음 표시로 흔들릴 때
이미 달아난 삼백서른닷새의 날들
손으로 되짚을 수 없어
마음 하나 허공에 매달고
눈빛 흐려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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