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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은 노래를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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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7  14: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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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 농부시인
물론 하늘과 땅의 몫이 팔할이다. 빛과 볕, 바람과 비는 하늘이 내리는 은총이다. 너른 품에 귤나무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잎과 꽃을 허락하는 너그러운 허용과 든든한 응원은 땅이 맡는다. 사람의 영역에 속하는 나머지 이할은 농부의 발걸음과 손길이다. 부지런히 둘러 살펴보고 손을 놀려 돌본다. 여기엔 거름주기, 전지와 전정, 귤밭 청결관리, 작물보호제와 영양제 살포 등이 포함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보살핌을 받은 나무들은 무럭무럭 성장한다, 사월 말부터는 제주 전역을 은은한 귤꽃 향으로 물들이는가 하면, 오뉴월 장마를 전후해서는 여름 순을 올려 신록의 초여름을 더욱 상큼하게 한다.

장맛비와 태풍을 견디고 시월에 이르면 귤은 드디어 새색시처럼 은근한 빛을 띠기 시작한다. 십일월 단풍나무며 감나무 잎에 물이 들고 무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드디어 귤은 만산홍엽의 흥취를 능가하는 농익은 자태를 뽐내며 농부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소설(小雪)을 전후한 십일월 중순 무렵에는 서귀포 모든 마을은 귤 수확으로 바빠진다. ‘눈물로 씨를 뿌린’ 결과 이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수확의 절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귤 수확철, 서귀포 귤밭은 마을 농부들은 물론이고 각지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모여든 일가친척과 지인들로 잔칫집 분위기가 된다. 반가운 사람끼리 수확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자리이니 잔칫집의 흥청거림 이상이다.

제주에서는 귤을 ‘딴다’고 하지 않고 ‘탄다’고 한다. 주렁주렁 열매가 달려 축축 늘어진 귤가지를 조심스럽게 잡고 수확용 가위로 하나 둘씩 귤을 따내면 축 늘어졌던 가지가 홀가분하다는 듯 하늘을 향해 튕겨 올라가며 ‘타닥 탓’ 소리를 내니 귤을 탄다고 하는 것이 더 입말에 맞다. 귤을 ‘탄다’는 표현은 ‘거문고나 가야금을 탄다’고 할 때의 연주의 의미와 맞물려 묘한 감흥을 안겨준다.

귤농사를 거듭하면서, 귤을 키우고 익어가게 하는 힘의 일할쯤은 ‘소리’, 곧 자연이 부르는 노래의 공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철 귤농부의 새벽을 깨우던 휘파람새의 청아한 노래, 장마철 지독한 사랑 같은 끈질긴 낙수음, 태풍철 귤밭 방풍림을 건반삼아 웅장하게 연주해 내는 바람의 교향악, 가을철 어디서인가 살며시 걸어들어온 무서리의 은은한 발짝 소리까지 귤밭을 둘러싼 소리들 어느 것 하나 노래가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귤을 ‘딴다’는 것은 ‘탄다’는 것이 맞다. 그 귤 하나에 꽉 들어차 있던 노래들이 ‘타닥’하는 연주음을 신호로 비로소 하늘로 가는 것이다. 이듬해 귤꽃을 피우고 귤을 기를 또 다른 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올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우리 마을 풍천초에서 학부모 배움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기타교실에서 통기타를 배웠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등등 배우기 좋고 반주하며 노래 부르기 좋은 몇 곡을 붙들고 7개월 넘게 딩동거리고 있다. 사십년 전 열아홉 시절에 배워야 했을 통기타에 늦깎이임에도 열심인 것은 기타교실 선생님께서 ‘취미로 하는 것이니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 차근차근 꾸준히 하시면 자연스럽게 늘어요!’라고 하신 격려 덕분이다.

뭐든지 배우고 깨닫는 일은 세월이 필요하다. 얼치기 귤농부 10년에 귤을 키우는 또 다른 힘이 노래임을 알게 된 것과 Am 코드에서 G7 코드로 손가락을 옮기는 것이 태산 옮기듯 힘들던 것이 제법 몇 곡을 딩동거릴 정도로 실력이 는 것도 세월의 힘이다.

오늘 마침 우리 마을 신풍리에 서설이 내린다. 휘날리는 눈발을 쳐다보며 내년에는 귤을 키워가는 노래들에 슬그머니 내 기타소리도 끼어 넣어볼까라고 당돌한 생각을 해본다. ‘기타 치는 농부시인’이라! 자못 그럴 듯해 혼자 헛웃음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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