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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으면 바보 되는 사회?
임창준  |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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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0  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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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창준
정부가 최근 원금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넘게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 159만명에게 소득심사를 거쳐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원금과 이자를 전액 탕감해주기로 해 논란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기반한 일종의 ‘경제 분야 대사면’인 셈인데, 10년 넘게 소액부채도 갚지 못할 정도면 사회가 나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이번 대책의 취지다.

그런데 ‘100% 빚 탕감’은 그간 유례가 없었던 데다, 이번 대책 역시 일회성이어서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경제원칙을 흔든다는 지적과 함께 형평성 논란도 뜨겁다. 역대 정부가 여러 차례 '빚 탕감' 정책을 내놨지만, 원금까지 모두 탕감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현 정부의 뿌리가 되는 노무현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신용 사면은 없다'는 원칙을 못 박았다. 당시 노정부는 ‘원금 탕감은 없다’는 걸 기조로 했다. 이 때 나온 신용불량자 대책은 저소득층 신용불량자에 대해서 원금이 아닌 이자만을 탕감하고 일반 신용불량자는 상환 기간을 늘려 빚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었다.

원금을 100% 탕감해준다는 소식에 성실히 꼬박꼬박 빚을 갚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회의감과 허탈감이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 문제다. 어렵사리 모아논 돈을 꼬박꼬박 갚아온 사람들만 바보가 되는 셈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앞으로 배째라 식으로 연체하면 되겠다", "왜 불량 채권을 가진 사람한테 혜택을 주느냐" 는 등 대부분 허탈감이 섞인 반응들이었다. 일부에선 심지어 국민투표라도 해서 다시 결정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장기소액연체자가 많아진 데는 상환능력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부실대출을 해준 민간의 책임이 크다. 금융기관이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약탈적 대출'이라고 한다. 경제적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것으로 이는 시장경제의 흐름에도 어긋난다.

‘전액 탕감’은 어쨌든 빚더미에 허덕이는 노약·취약 계층에겐 반가운 소식이겠으나 예상되는 부작용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신용질서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양심적으로 성실히 빚을 갚은 사람은 손해를 보고, 갚지 않은 사람은 이익을 본다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크다. “빚 갚으면 바보”라는 헛된 인식이 우리사회를 좀먹고 있다. 나아가 탕감 대상에서 빠진 장기·소액 연체자들이 “갚지 않고 버티면 언젠가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장기소액연체자들 중 상당수는 ‘어차피 벌어야 추심(推尋)으로 다 뜯길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일손을 놓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조치의 결과 이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궁색한 설명이다. 

그러나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로 인해 부정 심리를 낳을 여지도 크다. 금융위원회는 국세청·국토교통부·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재산·카드·주택임대차 상황을 보고, 탕감 여부를 따지겠다고 했다. 부정 감면자를 ‘금융질서 문란자’로 등록해 금융거래 불이익을 주겠다고도 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왜 국민임대주택에 외제차가 수두룩하고, 대형 아파트에 살면서 거액의 세금을 체납한 사람이 들끓겠는가. 정부가 스스로 신용질서를 왜곡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범죄 기준을 만드는 꼴이라고 한 중앙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벼랑 끝 채무자’를 돕는 제도는 탕감이 아니더라도 많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개인파산·회생·신용회복 제도가 모두 어려운 채무자를 구제하는 장치다. 연간 약 10만여명이 이들 제도를 통해 땀 흘려 신용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제도를 제쳐둔 채 무조건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것은 신용사회의 질서를 허무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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