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진

조금 늦게 출근하여 밤늦게야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동네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전에는 동네에서 장사도 하고 노동도 하고, 포장마차도 하며 안 해본 거 없이 살았다. 그때 사귄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되면 너무나 반가워 서로가 오랫동안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지난 주 토요일에 조금 늑장을 부리며 출근을 하려다가 한 청년과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 모자는 연립주택인 우리 집 대문간에 버려진 폐지를 줍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모자였다. 나는 반가워 먼저 청년의 어머니한테 인사를 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아주머니! 요즘 파지 값이 얼마에요?” 그렇게 인사를 하는데 옆에서 청년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가 리어카 줬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청년은 조금 지능이 낮은 청년이었는데 벌써 10년이 훨씬 넘은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서천수라는 한 건달이 살았다. 그는 이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건설현장에서 야방을 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건설현장에 불이 나서 그만 아이가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는 건달이 되었다. 나도 그때 사업을 여러 번 실패하여 길에서 노점을 하며 오뎅을 팔고 있을 때였다. 그는 우리 아이를 ‘장군이’라 부르면서 돈이 생기면 장난감도 사주고 특별히 예쁘게 생각해주던 그였다. 나는 그에게 사람 살만한 세상이라며, 함께 살아보자며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리어카 한 대를 사주었다. 그는 건달, 부랑아 생활을 마감하고 파지를 주우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떡국 한 그릇 먹이고 싶어서 그가 살고 있는 쪽방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불을 넣지 않은 방에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그만 얼어 죽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그의 장례를 주관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