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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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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4  15: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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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기철 시인
‘희미한/풍금 소리가/툭툭 끊어지고/있었다//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다름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의 한복판 얕은/하늘 밑으로/영롱한 날빛으로/하여금 따 우에선’(김종삼, ‘물桶’)

한 때 김종삼(1921-1983)의 시가 가슴에 와 스펀지의 물처럼 스미던 때가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너무 막막했다. 그 때, 김종삼의 시들이 종소리처럼 가슴을 울렸다.

시인도 아마 외로웠을 것이다. 시인의 고향은 황해도 운율. 그는 한국전쟁 때 남으로 내려왔다. 그 후, 그는 평생을 셋집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40이 넘어 겨우 얻은 방송국의 음악 담당 평직원으로 오직 음악과 시와 술밖에 모르고 살았다. 가족이 있었지만 잘 돌보지 못했다.

산문을 거의 쓰지 않았고, 평생 시집을 세 권만 남긴 그는 어느 글에서, 자기에게 시를 쓰게 만드는 힘은 말라르메, 고흐, 그리고 서양 고전음악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방송국의 평직원으로 20년을 근무했는데, 퇴근 후에도 음악을 들으려고 소주를 숨겨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그는 대중음악을 혐오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음악 용어나 서양 클래식 작곡가들이 많이 나온다.

기독교적인 이미지들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그의 후기 시편들이 그렇다. 그건 아마도 인간의 지향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종교적 실존으로 향한다는 키에르케골의 말처럼 그의 심성이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향한 때문일 것이다.

이 시도 음악과 종교적인 이미지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배경은 아마 교회당이나 성당 같다. 거기 시인이 앉아 있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같다. 이 시의 처음 연은 과거형이다. 풍금 소리는 찬송가나 성가의 반주음일 것같다. 교회나 성당에 음악이 없다면?

그 소리는 우리를 하늘로 고양시키고 땅 위의 우리를 참회하게 한다. 그런 음악 소리와 함께, “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뭘 했느냐?”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돌아보니 별로 한 게 없다. 어줍쟎은 시 나부랭이 몇 편 쓴 것과….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 전 목마른 사람들에게 그저 물 몇 통 길어다 준 것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호수만큼, 강만큼, 바다만큼 많은 일을 했다고 말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목마른 사람을 위해 단지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이 밖엔 없는 것같다. 시 좀 써서 칭찬 몇 번 받은 일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있는 이 지상 위의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같다. 앞으로라도 남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지만 자신이 없다. 그냥 이따금 이 소용없는 시나 쓸 도리밖에.

이렇게 이 시는 참회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허나 이 시인은 그 가난한 영혼이 빚은 영롱하고 밀도 있는 시로, 날이 갈수록 우리 시문학사에서 점점 찬연히 빛나고 있다. 그의 작은 시들이 이제 그런 풍금 소리가 돼 우리들의 내면을 세차게 울리고 있다. 그가 남긴 물 몇 통, 시 몇 통이 이제 많은 목마른 이들의 목을 추기고 있다.

내가 주어야 할 물 두어 사발, 그 그릇이 한 구석에 뎅그마니 앉아 있다.

‘내가 재벌이라면/메마른/양로원 뜰마다 푸르게 하리니/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눈물 지우는 어린것들을/이끌어 주리니/슬기로움을 안겨 주리니/기쁨 주리니.’(‘내가 재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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