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렬 시인

사람들은 왜 눈을 좋아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하얀 색채가 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나부끼는 자태가 마치 나비 날갯짓처럼 황홀해서일 것이다. 수북이 쌓인 모습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처럼 풍성해보여서일 것이다. 밟는 소리가 사각사각 좋아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상에 찌든 마음을 순백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모든 사람들이 다 눈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눈에 대한 트라우마(심리적·정신적 외상)가 있는 사람은 눈을 보면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이 되살아나 눈의 세계로부터 도피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눈의 경우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친 이런저런 사건들이 의식 속에 존재하든 무의식 가운데 숨어있든 가시가 돼 그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리지만, 정작 그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그의 역저에 해당하는 「꿈의 해석」이나 「정신분석학 입문」에서 인간의 노이로제나 히스테리, 정신장애 등은 그 어느 순간, 그 어떤 충동 또는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충동(충격)은 아동기든 청소년기든 장년기든 중년기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나 수시로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써 이것이 우리 내면 깊숙이 잠재되었다가 어느 날 ‘꿈’으로 왜곡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프로이트는 우리가 밤마다 꾸는 꿈을 성(性)과 연관하여 해석·분석하고 있는데 가령 ‘나무’는 ‘남성 성기’를, ‘동굴’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바 이러한 꿈은 성충동에 대한 쾌락적 욕망이 꿈으로 변형(왜곡 또는 상징화)돼 나타난 것이라는 견해다. 그럴 때 인간의 현실인식(의식세계)은 이것을 억제하고자 하는 도덕적·윤리적 욕망이 발현하는데, 이 과정에서 강하게 부딪치는 충돌과 이로 인해 생성된 갈등이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꿈속에서 이루어진 ‘성적 욕망(원자아)’은 ‘현실세계의 자아’에게 ‘검열을 받도록 하는(초자아)’데, 이때 생긴 충돌과 갈등을 자연스럽게 극복한 경우는 건강한 정신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크게 상충할 때 강박적 정신장애 등으로 발전한다는 것.

한편, 무의식적 충동의 반영물인 꿈을 오직 성(性)과 연결시켜 해석한다든지, 그것을 개인의 치유방법으로만 한정한 프로이트의 분석방법에 대해 반기를 든 정신분석학자도 있다. 에리히 프롬이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는 오히려 개인과 사회와의 충돌이 갈등을 낳게 되고 그것을 치유함으로써 건전한 휴머니즘 사회가 된다는 점에 역점을 둔 주장을 폈다. 프로이트의 경우든 에리히 프롬의 경우든 어느 특정개인이나, 사회속의 개인이나 할 것 없이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나름대로 어떤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성적 불만족으로, 어떤 사람은 어려운 환경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충격적인 과거 체험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등 심각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4·3이나 6·25나 5·18을 겪은 사람들의 고통을, 세월호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그 아픔을, 경쟁사회에서 지면 죽는다는 강박관념 속에 찌들어가는 사람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죽음이라는 극한상황을 선택하는 비극들이 이 사회에는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한 문제들을 치유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이 사회의 여러 모순들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허나,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여 도피하기보다는, 온갖 병폐와 악이 빠져나간 판도라상자에 마지막 남은 게 희망이듯, 그 희망을 붙잡고 뜨겁게 새해를 맞이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