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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새기는 여고위지(與古爲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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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7  12: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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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 농부시인
사랑채 벽에 걸어놓은 액자를 내려 먼지를 닦는다. 휘호의 뜻을 다시금 마음판에 새기려는 새해 첫날 소박한 의례다.

여고위지(與古爲志).

갑자년 상강절에 서예와 전각의 대가이신 구당(丘堂) 여원구 선생께서 취재차 당신의 서예연구실(서울 종각 근처)을 방문한 내게 선물한 네 글자 휘호다. 갑자년이니 1984년이고, 상강절이니 10월 하순 언저리 가을이 무렵이겠다. 잡지사 <여원(女苑)>의 신출내기 기자로 온갖 취재처를 쏘다니던 시절, 마침 시인 묵객을 인터뷰 지면에 모시는 꼭지를 맡아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등 명필들을 뵌 연후에 구당 선생께도 인사드리는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차담을 나누면서 선생께서 내 ‘입지’를 물으셨는데 어물쩍거리다 ‘시를 쓰고, 시인답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조심스럽게 밝혔던 기억이 난다. 이때 잠시 찻잔을 어루만지다가 먹을 갈아 써주신 휘호가 ‘여고위지’ 네 글자다. 곧은 선비의 풍모를 갖추고 맑은 정기를 잃지 않는 시인의 길을 가려면, 무엇보다 뜻이 굳세어야 하니 늘 선현(先賢)의 지혜와 명철을 귀감 삼으라는 덕담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식은 있으나 지혜의 우물이 깊지 못해 ‘여고위지’의 참 경지를 알지 못하다가 요즘에야 끝자락 정도 붙잡았다는 생각이다.

감히 고백하건대, 세상 앞에 당당히 서되 부드럽고(온유) 너그러우며(관대) 다소곳하게(겸손) 타인과 타자에 대한 교감과 공감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한 해를 살아가리라 다짐하면서, ‘고(古)’자가 가리키는 경계와 영역을 넓혀 보려는 것이다. 

지난해 상강절 무렵부터 한 가지를 끊고 한 가지를 회복했다. 끊은 것은 사십 년 동안 인박혔던 술이고, 회복한 것은 새벽기도다. 무슨 대단한 구도자의 길을 걷겠다는 결기는 아니고, 저 오래 전 구당 선생이 내게 선물했던 그 휘호가 여전히 시퍼렇게 견책하고 있듯이 심지(心志)를 굳게 하면서 장년의 삶을 도모해 보겠다는 소망 때문이다.

농부시인입네 하면서 귤농사에 몸이 지치면 습관처럼 입에 대던 탁배기조차 딱 끊으니 먼저 몸이 가볍고 횡설수설이 줄었다.
또 한 가지 새벽기도의 회복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찾아 누려야 할 복이지만, 그간 게으름과 교만, 위선과 탐욕의 늪에서 허덕이느라 좀처럼 되찾지 못한 ‘영혼의 샘터’였다. 새벽 4시마다 잠자리를 털고 예배의 처소로 달려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경건의 시간-회개와 성찰의 눈물, 결단과 소망의 분량을 늘려 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 나와 가족, 이웃과 세상을 위해 ‘믿음·소망·사랑’을 간구하는 기도의 단을 쌓아가는 중이다.

새해가 시작되자 호사가들이 너도나도 말잔치, 글잔치를 펼치면서 올해가 황금개띠해니 마치 천지개벽 만사형통인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새해 덕담이니 포용이 우선이지만, 개중에는 껍데기뿐인 가식과 밑천이 뻔한 요설과 몽상까지 너저분하게 넘쳐나 불편함을 숨길 수 없다.

나는 정견과 정책, 법조문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웃과 세상에 바치는 눈물 한 방울과 사랑 한 조각이 천지개벽을 이루는 힘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이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2017년 지난 한 해 동안 이웃과 세상에 ‘사랑의 빚’을 짐으로써 내가 누렸던 복을 헤아려본다. 하나 둘, 셋, 넷… 새로 마련한 다이어리에 써내려가다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만다. 내가 나누고 베푼 것보다 받은 사랑과 은혜가 크고 넘쳐서다.

2018년 새해를 맞아 내가 꿈꾸는 소망의 가짓수는 결국 또 다른 ‘사랑의 빚’을 늘리는 일일 것이다. 작은 몸부림이나마 내가 그 ‘사랑의 빚’을 갚는 일은 말과 글을 삼가면서 세월을 아끼는 일이겠다. 그 아낀 세월, 후회하는 일 없이 내게 주어진 일을 충직하게 해나가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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