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중 제주대 교수

제주에 살다보면 사시사철 푸른 잎을 계속 볼 수 있다. 제주에는 낙엽수도 있지만 상록수 종류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녹나무, 굴거리나무, 먼나무, 야왜나무, 홍가시나무, 감귤나무, 동백나무 등의 상록활엽수가 있고, 소나무 등의 상록침엽수도 있다. 한 겨울 해가 뜰 때 상록활엽수는 더욱 반짝반짝 빛을 반사시킨다.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잎은 지질 성분인 왁스층으로 인한 것이다. 지상부에 떠있는 잎에서 물의 소실을 방지하고, 해충이나 바람 등으로 인한 상처를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상록수는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초록의 잎을 가지고 있는 나무를 뜻한다. 그렇다고 상록수에서 잎이 아예 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굴거리나무처럼 1년마다 새잎이 나올 때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소나무 잎은 2년, 어떤 종류는 10년 이상 달려있는 것도 있다. 잎이 달려 있는 기한이 얼마이든 간에 사람이 볼 때 초록색 잎을 항상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 겨울에도 상록수를 볼 수 있어 눈의 피로도도 적고, 생명의 놀라움도 느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상록수보다는 낙엽수를 더 좋아한다. 낙엽수로 이루어진 숲의 산길을 걸으며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낙엽에서 나는 향기가 나는 좋다. 겨울이 오기 전에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햇빛을 이용해 합성한 영양분을 뿌리, 열매 등의 저장조직에 저장하고, 일제히 잎을 떨어뜨려 땅 위에 줄기와 가지만을 남긴 모습에서 생명의 지혜를 느끼게 된다. 낙엽차를 마셔본 적이 있는가? 낙엽에도 항산물질이 많아 차로 마시기에도 좋다. 초록색 잎도 좋은 향을 내지만, 낙엽도 차로 마셔보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초록색 잎을 말린 차와는 다른 향을 낸다. 낙엽은 개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잎에 예정된 죽음(예정사)을 일으켜서 생긴다. 이와 같이 잎의 죽음은 향기를 내고, 썩어서 영양분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발현에 사용이 된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죽은 것 같아 보이는 나무이지만 내부에는 생명이 살아 있다. 겨울에 눈이 내려 상록수에 쌓인 눈꽃도 좋지만, 마른 가지에 쌓인 눈꽃도 멋있다.

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의 ‘겨울 나무’라는 노래가 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의 1절의 가사는 보통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서, 눈 쌓인 나무를 보면 흥얼거리게 된다. 그러나 2절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라는 2절의 가사는 삶에 대한 철학도 담겨 있다. 나 또한 내가 있는 그 자리에 나는 생명을 품고 꽃을 피울 봄, 여름을 기다려야 한다.

미국에서 방문연구원으로 13개월 지냈던 도시는 눈이 전혀 내리지 않았고, 상록활엽수만 있던 동네였다. 매일 보는 전경은 거의 변화가 없어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 어려웠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도 자연환경의 변화가 없다보니 삶이 무료한 면도 있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은 더욱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추운 겨울인 시기도 있다. 인생의 추운 겨울에 포기하는 일부 연예인들의 모습을 본다.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의미를 만들지 못한 죽음이다. 추운 겨울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제주의 모습은 추운 겨울이다. 교통, 폐기물, 난개발, 오염 등 제주의 초록은 많이 사라졌다. 제주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추운 겨울이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