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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에 봄비 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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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2  11: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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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 농부시인
한파에 폭설로 된몸살을 앓던 날씨가 엿새 만에 반짝 개였다. 창을 여니, 직박구리 한 마리 동백나무에 날아든다. 짝꿍 한 마리는 앞마당으로 내려와 개밥그릇을 넘본다. 구상나무 가지 위 재재거리는 참새 가족들도 반갑다. 다들 안녕했구나!

입춘이 2월 4일(일요일)이었다. 입춘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해 무려 엿새 동안(2월 3일~8일) 퍼부은 폭설에 봄(春)이 서(立)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아니 고꾸라졌다.

예년 같으면 동백꽃 붉은 빛에 뒤질세라 매화가 벙글고, 외담 밑 양지 바른 곳에는 수선화가 단아하게 꽃을 피워 올렸을 터인데, 그만 온통 눈으로 다 덮이고 말았다.

‘입춘을 시샘하나 보네! 고작 하루 정도 내리다 그치겠지!’ 하던 것은 순진한 바람이었다. 눈보라는 기본이고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설에 문을 꽁꽁 닫아걸고, 섣부른 판단으로 하늘의 섭리를 지레짐작했던 오만을 자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지경이니 입춘첩을 내건다는 것도 춘몽에 불과했다.

저 아래 바닷가마을 표선민속촌 어귀에 ‘새 철 드는 날 입춘첩 받앙갑써!’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고, 나도 올해는 입춘첩 하나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엊그제였다.

<세시잡영>에 이르기를, ‘눈꽃처럼 흰 종이에 약동하는 글씨/곳곳마다 나붙은 시구들/사립문에도 봄바람 불어오고/아이들도 쓸 줄 아는 입춘대길’이라고 한 만큼, ‘입춘대길 건양다경’ 이리 흔한 것보다는 더 문자속 깊어 보이는 대련도 궁리해 놓았다.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같은 기복적 염원을  담은 대련에 마음 가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나 같은 농부시인도 눈치 보지 않고 음풍농월하는 시절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봉명남산월 인유북악풍(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을 붙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춘첩을 내거는 건 고사하고 엿새 동안 납작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이처럼 ‘눈부신 굴복’도 복이지 싶었다.

설국으로 변한 뜨락을 내다보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니 이렇게 항거하지 못할 고립도 마음자리 돌아보는 데는 그만이구나 싶었다.

하루 갠 다음날인 토요일(2월 10일)엔 제법 세찬 봄비가 내렸다.

설국에 내리는 봄비라! 언제 녹을까 싶었던 눈더미들이 그야말로 봄눈 녹듯 스러지는데,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어디 날씨뿐이랴! 올해 2월은 특히 눈보라 날리듯 ‘말’들이 넘쳐나는 것 같다. 떠돌던 말들이 사실이 되고, 불편했던 진실이 광장으로 내던져져 그 두껍고 음습한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함량미달 정치인들의 공갈빵 소견을 듣는 것은 이제 두통이 생길 지경이고, ‘법의 여신 디케의 저울’을 무색케 하는 판결에 대중의 원성과 분노가 성을 무너뜨릴 듯하다. 한편 성폭력에 대해 불감과 외면이 상습이던 세태가 ‘미투(Me too) 운동’의 불길로 곧추세워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불편하고 민망한 것은 국민적 환호와 기대 속에 막을 올린 평창올림픽을 자꾸 평양올림픽이라고 각색하면서 이득을 취하려 드는 반평화, 반통일 수구세력이 나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런저런 난망함이 이 봄비에 다 씻기고 녹아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집에도 누적 강설량 삼십센티 이상 쌓여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폭설도 한바탕 봄비에 녹아내리는 것을 보면서, 봄비처럼 시원한 국면전환이 ‘새 철(春) 드는 즈음에 꼿꼿하게 서기(立)’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설 명절 지난 다음날이 우수다.

대동강물 풀리듯 꼬이고 막혔던 세상만사가 술술 풀려나가되, 그 가치지향은 ‘공평무사·공명정대’여야 한다는 것은 내남없는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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