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중 제주대 교수

새해에도 여전히 세상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고,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을 느끼다 보니 새해 들어 작년보다 책을 많이 읽고 있다. 법전원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나 아렌트가 지은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을 노동, 직업, 행위라는 3가지 관점에서 규정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되지 않던 사람에 대해 이해가 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됐다. 올해는 인문 서적을 읽기 위해, 독서 목록를 작성도 했다. 지난주부터 읽고 있는 인문 교양 서적을 읽다가 일기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돼, 책도 읽지만 일기도 쓰고 있다.

일기하면 우선 초등학교 때 매일 써서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께 점검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점검 받기 전 쓰지 못한 일기를 몰아서 쓰기도 했다. 방학 때 탐구생활 작성과 더불어 일기는 필수 방학숙제였다. 학기 중의 일기야 몰아서 써도 별 부담이 없었지만, 방학 기간 동안의 일기는 너무 많아 몰아서 한번에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학원이 없던 시절이라 방학동안 매일 하던 일들은 반복된 일상으로 인해 매일 내용이 유사해서 몰아 써도 거짓말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여름에는 농사일 돕기, 겨울에는 산이나 들에서 뛰어놀기 등 항상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밀린 일기를 쓰고자 하는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날씨였다. 요즘에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또는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지난 날씨를 알아볼 수 있다. 온도가 몇 도였는지, 비나 눈이 왔는지, 태풍으로 인해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등 많은 정보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날씨는 신문이나 TV 날씨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알 수 있어서, 밀린 일기를 쓰려면 버지리 않고 남아 있는 아버지께서 보시는 농민신문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기를 성실하게 쓴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휴대 전화가 없던 시절이고, 집 전화도 일부 가정에만 보급돼 있던 시절이라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한옥 고향 집을 새로 지으면서 잃어버린 나의 추억 중에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썼던 일기가 사라진 것이 가장 안타깝다. 다른 일기로서 대학 시절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시절의 감정 찌꺼기를 풀어놓았던, 청춘의 단상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대학원 시절 학위와 연구, 진로와 관련된 고민에 대해 1년 넘게 작성했던 것이 남아 있다. 미국에서 가족 여행을 하면서 여행일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쌓인 추억의 기록들은 기억력이 쇠퇴해가는 나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기를 오랜 만에 꺼내 보면 대부분 어렵고 힘든 내 삶이 왜 그런지에 대한 불평과 하소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것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과거가 덧없이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매년 3월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학창 시절에 자기 개발을 위한 방법 중 하나로써 일기 쓰기를 권면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글쓰기 역량도 향상되는 부가적인 소득도 생긴다.

자살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그들도 일기를 작성했을까? 혹시 일기를 작성했다면 자살까지는 이르지 않았을까? 라는 안타까움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외로워서 배신감에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신 일기에 외로움을, 배신감을 풀어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룹의 ‘십년 전 일기를 꺼내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 중에 ‘10년이나 지난 일기를 꺼내어 들었지 왜 그토록 많은 고민의 낱말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가 있다. 이 노래 듣다보면 가수가 읊조리며 이렇게 외친다. ‘그래 지금 힘겹다고 생각하는 날들도 언젠가 다가올 날에는 다시 돌아오고픈 시간일거야 세상은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