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순복 동화작가

엊그제 끝난 평창 올림픽에서 김보름 선수는 은메달을 따고도 환하게 웃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급기야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까마는 이전 시합에서 보여 준 독불적인 행동으로 많은 국민들은 청와대 홈피에 선수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 수가 오십만을 넘어섰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앞서 경기에서 보여준 작태는 실로 괘씸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무례함이 극치였다면 은메달을 따서 보여준 행동은 시합을 본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잠재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컸으니까.

과연 이러한 행동들이 김보람 선수가 자초한 것일까. 누군가, 어디선가 지시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은 여태껏 보아왔던 우리나라의 체육계 관행상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라고 말하기도 겁이 나는 건 사실이다. 위에서, 조직에서 시켰으니까 한 행동이겠지 하는 의구심이 더는 어나지 않도록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서로 내 탓이 아니라 하지 말고 김보름 선수가 겪었을 마음의 짐을 덜어 주는 미투는 전개되지 않을까. 빙상계만 그럴까? 

이왕 쓰나미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미투 물결이 사방 곳곳에서 일어나길 응원한다. 하지만 미투를 통해 오래 전 지난 억울함과 수치스러움을 폭로한들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건 역시 상처뿐일 것이라는 걸 우리는 묵시적으로 다 안다.

제발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피해자들을 마녀사냥 해서 극단으로 치닫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나도 당했다는 미투.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미투 물결을 접하면서 십 년, 이십 년 지난 일들을 이제 와서 미투 한들 얻는것보다는 잃는 게 더 많은 한국사회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한심스럽게 보는 풍토가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 과연 미투로 과거를 고백한다고 해서 성적인 병폐가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용기 있는 분들이 나서 선구자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용기를 내어 줌이 진심으로 고맙긴 하다.

개울물이 도랑물이 되고 도랑물이 모여서 강과 바다가 되듯이 분명히 지속적으로 이 운동이 확산돼 준다면 변하기는 변할 것이지만 남자들이 고질적인 병폐가 미투 운동으로 인해 고쳐질 거라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남자는, 남자가’라는 묵시적 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동물적 본능을 제어할 능력이 엉뚱한 곳으로 전이 된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여자나 남자는 본래 갖고 있는 성적욕구를 제어하는 능력은 왜 남자가 부족하단 말인가?

미투 운동이 지속해서 일어날 거라는 기대와 걱정보다는 그 후에 가해자나 피해자가 안고 갈 많은 문제들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실로 염려스러운 일이다. 물론 일련의 문장들을 통해서 정말 어쩔 수없이 당한 사례들을 보면 안쓰럽지만 그래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필자도 사십여 년 전 그런 상황들에 처해 본적이 몇 번 있었다. 친구의 남편이 친구 앞에서 발로 툭툭 건드리며 장난치기에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되기에 일어서며 전화기를 부숴버린 일도 있었고, 술기운에 내 어깨에 손을 걸치는 모 신문사 기자를 발로 차 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그 친구의 집에는 시부모님 초상 때 조문 외에 한 번도 가지를 않았으며 남자들과의 술자리는 알아서 빠지는 습관이 생겼다.

즉, 자기가 알아서 조심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그보다 먼저는 남자가 여자를 성 노리개로 여기는 사회적, 문화적 관습들이 근본적으로 고쳐지길 희망한다. 앞으로 사회 모든 상하조직에서 여성이 안심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시작된 미투에 찬물 끼얹지 마시라. 권력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