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성 농부시인

봄은 보는 것이다. 한파와 폭설을 견디며 꽃눈을 앙팡지게 보듬고 있다가 이리 일제히 망울을 열어젖히는 홍매화를 보므로 봄이다.

손금만한 주름이 이마를 하나 더 가로지르고 백미(白眉)가 되어가는 눈썹이 자꾸 거슬려도, 휘영청 보름달에 그만 소년처럼 가슴이 뛰는 나의 감탄이 아직 이리도 생생하므로 봄이다.

이 봄에 마을의 귀염둥이 삼둥이들이 벌써 일곱 살이 되었다.

진동산 가는 길 언덕배기 양지바른 집에서 태어난 삼둥이는 아이들 엄마 아빠가 뒤늦게 본 보물들이다. 눈물로, 기도로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엄마는 태중에 뛰노는 아이들이 세 명인 줄 알았고, 아빠는 ‘옳다구나!’하고 기뻐하며 ‘아름·다운·강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내가 초치듯 말했다.
 
“다 딸이거나, 다 아들이면 어떡하라고?” 아이 아빠는 미소로 넘겼다. 기다림의 힘은 예지의 힘과도 맞닿아 있는 걸까? 기막힌 것이 먼저 나온 아이가 딸이고 다음은 아들, 아들 순이었다. 먼저 나온 첫 딸이자 맏딸에게 ‘아름’이, 둘째 아들에게는 ‘다운’이, 셋째 아들 막내둥이에게는 ‘강산’이 이름이 주어졌다. 기막히게 순열이 맞아떨어졌다. 미리 지어 놓은 이름 세 번째가 ’강산‘이었는데 딸이었으면 난감했을 터였다.

이 아이들이 어릴 땐 병치레가 많아 서울 큰 병원을 들락거리느라 부모와 팔순 할머니까지 진땀을 빼게 하더니, 이제 봄을 맞아 유치원에 입학한 것이다. 마을의 언니·오빠·형들이 다니는 풍천초에 딸린 ‘병설 유치원’이다. 이태 전, 유치원 규모를 늘리고 새 단장을 할 때만 해도 ‘여길 채울 아이들이 들어오기나 할까?’ 고개를 갸웃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그 유치원이다.

지난 주 3월 2일 금요일, 입학식을 마치고 교장선생님(고정희)이 전화를 하셨다.

“새 학기를 맞아 교감선생님과 선생님 몇 분이 새로 오셨어요. 우리 학교 전교생수가 이번에 초등학생 83명… 놀라지 마세요. 유치원생 18명까지 합해 101명이에요.”

정말 크게 놀라야 할 것은, 풍천초등학교가 2014년도만 해도 전교생이 서른 명도 안 되어 폐교 및 통폐합대상 ‘작은학교’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마을 학교 풍천초를 모죽처럼 우람차게 성장케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주저함 없이 학교 살리기에 힘써온 마을주민, 학부모, 교사, 교장선생님, 서귀포시와 제주도청 마을살리기 및 농촌유학 관련부서 공무원들, 교육감 등등 여러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학교버스가 도착했는지 아이들이 리사무소 쪽으로 달려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보지 않아도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 봄에 나의 오감도 만만치 않게 깨어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