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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스케치
김광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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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5  13: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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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렬 시인
어느 작은 공원에 산책 나갔더니, 거기 두 개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벚나무가 온힘을 다해 와자자 벚꽃을 피워내는 그 옆에 동백꽃이 통째로 떨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허나, 그것은 3월 말쯤의 모습이고 4월 초순의 상황은 다소 달랐다. 새잎이 돋아나면서 벚꽃은 거의 지고 있었고, 동백꽃도 반쯤은 져, 꽃 진 자리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붉은 빛깔과 하얀 빛깔, 그리고 연분홍 빛깔들이 서로 어우러져 마치 선계(仙界)에 발 디딘 듯 황홀했다. 그곳에선 어떤 갈등이나 대립, 충돌이 없을 것 같았다.

제주4·3 70주년을 추념하는 4·3시화전 개막식이 지난 3월 29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있었다. 그곳에 참석했더니 누군가 동백꽃 형상의 작은 배지(휘장) 하나를 준다. 추모의 상징물이므로 나는 그것을 기꺼이 앞가슴에 달았다. 한 순간 무언가 찡, 하는 울림이 왔다. 그리고 4월 2일에는 문예회관 앞뜰에서 4·3전야제가 열렸는데 그곳에 갔더니 역시 동백꽃 배지를 준다. 앞서 입었던 다른 옷에 꽂아둔 채로 가서 주었나보다. 그것을 나는 또 앞가슴에 달았다. 이번에도 뜨거운 그 무엇이 불끈, 솟았다.

올해 4·3전야제 인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나는 스무 해 남짓 동안 거의 대부분 4·3전야제에 얼굴을 내밀어 왔는데 이번처럼 성황을 이룬 적은 없었던 것같다. 그전에는 4·3에 대한 관심의 깊이가 낮기도 했지만, 더욱이 꽃샘바람이 광풍에 가까운 추위를 몰고 오는 날이면 객석의 관객보다 오히려 출연진과 스텝진이 많다고 느껴질 정도로 스산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 비로소 4·3의 보편화랄까 대중화란 게 이루어지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봤다. 쉬쉬하면서 가슴앓이 하던 4·3이, 제노사이드의 비극 속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앓던 4·3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망각돼져가던 4·3이, 오직 이념의 잣대로만 4·3을 재단하려는 일부 인사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4·3이, 이제 욱신거리는 허리를 쭉 펴고 한껏 기지개를 펴려는 모양이다.

지난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는 원혼들을 위무하는 4·3추념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그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한지 12년 만이다. 추도사를 통해 4·3을 위무하는 한편 앞으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겠다는 취지의 언약을 공표했다. 현장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4·3유가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4·3의 아픔에 감정이입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4·3은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제주의 아프고도 슬픈 역사이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으로서 이를 외면한다는 것은 이 땅을 버리는 일이요, 나를 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동백꽃은 붉다. 붉다 못해 짙붉다. 그럼에도 화사하거나 화려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순하거나 가볍지도 않다. 무언가 존재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아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지는 꽃이다. 나 혼자 결코 기뻐하거나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는 듯 겸손한 느낌마저 든다.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듯 비장감마저 감돈다. 땅에 떨어진 모습은 더욱 처연하다. 다른 꽃들처럼 꽃잎꽃잎 떨어지지 않고 통째로 떨어져 있다. 마치 댕강 베어져나간 누군가의 모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4·3은 땅에 떨어져 누운 동백꽃 같다.

더는 이 제주 섬에 4·3과 같은 불행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제 누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인가. 화해와 평화만이 살길이다. 떨어져서도 서로 뒤엉키고 부둥켜안은 채 한낮의 한때를 보내고 있는 저 아름다운 꽃잎들처럼, 세상이 보다 넉넉하고 향기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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