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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根性)
강순복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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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2  11: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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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순복 동화작가
엊그제 날씨가 유혹하는 바람에 친구랑 둘이서 비양도로 바람 맞이를 다녀왔다. 한림으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수평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가는 도항선에 몸을 실은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휴식이라는 걸 만끽했다.

제주의 상징을 닮은 바람까지 숨죽이고 하늘까지 푸르른  봄날.

무엇이나 사랑할 수 있을 것같고, 어떤 일이나 용서할 수도 있을 것같은 넉넉함 마저 영육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모 식당으로 가서 때늦은 점심을 먹은 뒤 천천히 비양도를 한 바퀴 돌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파도가 만들어 놓은 석상들을 보며 하나쯤 훔쳐 가고 싶은 마음도 잠시,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 숙여지던 시간도 순간이었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바다에 떠 있는 부표의 잔해들과 일회용 플라스틱 병들과 스티로폼 부스러기들…….

이곳에 거주하는 백 오십 명도 되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것이고(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관광객이? 설마 그럴리가 있나 하며 걷다가 깨달은 것은 파도에 떠밀려 왔을 것이라는 결론(이 결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잘 알지만)을 내렸다. 그 순간 앞서가던 사람 중 한 분이 슬쩍 과자 봉지를 흘리고 간다. 뒤쫓아 이 쓰레기 줍고 가시라고 하고 싶지만 괜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음은 옳은 것을 옳다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음이다.

남더러는 옳은 건 옳다 하고 그른 건 그르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함이 비겁함일까 두려움일까?

카페에 가면 너무나 당연하게 일회용 컵 말고요 하고 주문해 보지만 저희는 일회용만 사용하는데요,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마음을 어찌 설명할까?

살짝 웃으며 일회용 줄이자고 하면 직원도 따라서 멋쩍게 웃으며 유리컵에 내어 준다.

거창하게 후손을 위해서 쓰레기를 줄이자고 할 필요도 없이 당장 내가 사는 이 현실 속에 저 많은 쓰레기를 당장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일회용을 줄여 보리라 마음먹고 생활해 보지만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일회용품은 내 손에 먼저 달려와 잡혀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군데군데 모인 쓰레기 더미들을 보면서 저 많은 쓰레기는 누가 언제 치워줄까 하는 마음도 잠시, 바닷가로 밀려와 두텁게 쌓여가는 생활 쓰레기를 거두지 않고 방치하는 것만 같아서 슬펐다. 생각 같아선 얼른 들어가 발 벗고 쓰레기들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왜? 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쪽빛 바다를 보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사하면서도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 유지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더럽고 추악해진 내면을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제발 저 일회용 물병들이 바다를 떠돌며 여행하지 않기를!

맛있게 만들어 준 어느 펜션 식당에서 기분 좋은 식사로 든든한 힘을 비양봉을 오르내려 숨 가쁘게 선착장에 도착한 후에도, 그리고 제주로 돌아와서도 내 눈 앞에는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이 너울대고 있다.

비양도를 찾는 관광객도 아닐 것이고 더욱이 현지인은 더더욱 아닐 거라고 믿어 보지만 한국인들이 버린 것은 틀림없으니까(한국어로 쓰인 쓰레기들이었으니).

제발 부탁이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고 해도 버리는 근성은 버리고, 버리지 않은 근성이 몸에 배기를 부탁하고 싶다.

쓰레기가 없는 깨끗한 바닷물을 보며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가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 갔으면 희망한다.

며칠 후 나는 다시 비양도를 찾아 짧은 휴식을 할 것이다. 그 날은 정말 깨끗한 바다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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