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기철 시인

‘강일독경 유일독사剛日讀經 柔日讀史’라고 했는데, 역사보다 경서, 철학 쪽에 손이 더 가는 건 내 나날의 심사가 평온하지 않았음인가.

십년 째 가고 있는 제주철학사랑방은 말 그대로 소소하다. 계절마다 인원에 구애 없이 강좌를 여는 인문학 공부 모임이다. 2002년 무렵 제주대 철학과의 젊은 교수들이 ‘철학의 대중화, 대중의 철학화’를 지향하며 시작했다.

이번 봄 강좌는 덕성여대 교수를 지낸 정계섭 선생이다. 선생은 눈매가 날카롭다. 제주대에 한 학기 초빙으로 내려왔다가 주 1회 여섯 번 우리 강좌를 맡게 됐다. 프랑스에 유학해 파리7대학에서 일반언어학박사를 했다. 강좌 전체의 주제는 ‘생각을 통찰하다’다. 첫 시간엔 깜빡 잊고 강의 자료를 못 챙겨 왔다. 그걸 안 순간 당황했으나 ‘마음챙김(위빠사나)’을 하고 강의를 했다.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그치지 않는다. 보통 ’나의 생각‘을 ’나‘와 동일시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나의 생각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때의 조건에 따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냥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십상이라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다고 해서 불행에 빠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불행에 빠지게 된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감독할 줄 모르면 결국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인간은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쉴사이 없이 변화하는 마음에 끌려다니지 말고 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매 순간 주시해야(신독愼獨)!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면 끊임없는 불안과 걱정 근심,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가 두렵게 생각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생각은 빛의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수행의 중요성). 현상학적 환원: 모든 편견, 선입관, 인상, 기억, 지식 등을 폐기시켜 의식을 가장 순수한 상태로 되돌리는 행위’.

‘화난 상태를 즉시 알아차리면 스르륵 화가 사라진다(심리학적 근거). 알아차리면서 대화하면 말실수를 안 하게 된다(경청). 오늘을 최고로 사는 날로 사는 삶: 매사를 알아차리는 삶. 아침에 기상해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이기’.

지난번 4강은 ‘감정 이입’. 관련 책이 거의 없다. 화자의 감정을 다른 대상에 투영하는 것. 사람만이 아니라 생명체(동식물)의 몸과 마음을 통해 세계를 느끼고 자각하는 것. 부모, 교사, 성직자는 이 능력이 필수다. 지도자도.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 보는 능력의 중요성. 남의 아픔을 느끼는 것, 낮은 데로 임하는 것.

제 5강은 사랑방을 바꿨다. 빌려 하는 장소가 여의치 않아. 제주중앙성당 부근 고전음악감상실 까사돌. 거긴 오래 메쓰를 쥐었던, 주인인 70대 후반 O원장이 모은 CD, DVD가 엄청나게 많다. 나이 든 지인들, 중년들, 어쩌다 안 이방인 등이 온다. 저렴한 커피 한 잔 값이다.

오늘 주제는 ‘사고 실험’이다. 사고 실험은 실제로 실험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각만으로 진행하는 실험. 칸트의 ‘순수이성’ 실험, 갈릴레이, 아인슈타인의 동시성,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학은 다 사고 실험이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염재기’는 일어나보니 몸뚱아리가 사라진 얘기인데,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를 되새기게 한다. 카프카의 ‘변신’보다 뛰어나다…’

이렇게 철학사랑방의 대화는 계속된다. 강일독경剛日讀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