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덕 편집국장

고려때 김황원(金黃元)이란 시인이 있었다. 어느 날 대동강 연광정(練光亭)에 올랐는데 그 경관이 압권이었다.

그 모습을 표현하고자 시를 지었다. 시인은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이라는 첫 구절은 지었는데 다음 시구가 생각이 안나 내려왔다. 그 경관을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생각하니 너무 억울해 엉엉 통곡하며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밭두덩 초라한 울타리 밑에 노란 꽃들이 숨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섬광처럼 느끼는 것이 있었다.

시인은 “아, 이것이구나!”하고 소장서각점점화(小墻西脚點點華)란 대구(對句)를 얻고 너무 감격에 겨워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느낌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일까.

여기서 .....점점산(點點山)은 큰 것에 도취한 감흥을 말하는데 대흥(大興)이라 하고 점점화(點點華)는 조그마한 것에 도취한 감흥이라해서 소흥(小興)이라 했다.

옛 시작법(詩作法)에 대흥에 소흥을 대구시키는 것이 하나의 유형을 이루고 있는데 큰 흥취만 찾을 것이 아니라 작은 흥취도 찾는 것이 풍류의 하나로 자리잡기도 했다.

헬렌켈러의 전기속에도 소황홀(소황홀-마이너 엑스터시)이라는 개념이 있다.
 
앞을 못보는 헬렌켈러 부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한 마리를 두 손으로 잡았는데 거기에서 오는 촉감은 여느 모피에서 느꼈던 촉감과 달랐다. 헬렌켈러는 거기에서 오는 작은 생명의 심오한 의미를 알고 오금이 저리도록 기뻐했다고 한다.

이 오금이 저리도록 느끼는 상상 이상의 체험을 그녀는 전기에서 ‘소황홀’로 표현했다.

인생사도 그렇다. 얻기 힘든 대황홀만 허겁지겁 추구하다 얻지 못하고 실망하기 보다 일상 생활에서 얻기 쉬운 소황홀을 자주 밀도높게 체험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일 수 있다.

고려 때 시인 이인로(李仁老)는 “…헤어진 옷 틈, 쬐어든 볕살에 조는 것만 못한 것을…”이라고 소황홀을 노래했다.

매월당(梅月堂)도 그 수려하고 웅장한 금강산의 큰 황홀보다 단풍나무 잎에서 굴러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보고 맘속에서 붉은구슬로 받아들이는 작은 황홀을 노래하고 있다.

80년대 미국의 문명비평가 부어스틴은 “여행에서 얻는 만족은 큰 것에서 얻으려 할수록 작아지고 작은 것에서 얻으려 할수록 커진다”고 했다. 부어스틴은 이 여행 느낌의 감각을 수치화, 여행함수라고 했다.

과연 우리들의 여행함수는 몇일까.

이 소황홀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많이 볼 수 있다.

요즘 우리가 주말에 오르는 오름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를 쉬이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 꽃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니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냥 우리가 쉽게 숨쉬는 것처럼 평상시 아무것도 아닌 모습으로 스치고 지나는 건 아닐까.

과연 그 꽃에서 어떤 감흥이 나올까. 소황홀이나 대황홀은 둘째치고 감흥이 있을까.

필자는 솔직히 그럴 감흥이 있을까라고 의문이 선다.

그러나 이젠 필자도 그 아무렇지도 않은 주변부터 볼 것이다. 비록 작은 것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필자의 인간성에 문제가 있으리라.

시멘트같은 세상의 황량함에 얹혀진 필자의 감성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핀 들꽃에서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나도 내 자신이 어떤 감성의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